
유교 보이, 유교 걸이라면 다소 민망할 수 있습니다. 바지가 엉덩이에 걸쳐져 있고 언더웨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과감한 옷차림, 이른바 '새깅(sagging)' 패션이 최근 돋보이고 있는데요.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파라치 컷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이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새깅은 스테디한 스타일로 인기를 끌어왔습니다. 저스틴 비버 같은 팝스타부터 드릴, 트랩 등 다양한 장르의 래퍼들이 지속해서 착용하면서 인기 기반(?)을 유지했는데요. 국내에서는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했죠.
그런데 요즘엔 K팝 아이돌들이 바지를 내려 입고 나서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유교 보이·걸들은 "과거 스키니진처럼 유행하진 않겠지"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문제는 바지가 이미 내려갈 대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

새깅이 단순히 바지를 내려 입기만 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속옷을 자랑하는 룩도 아닌데요. 새깅을 선보이는 이들은 바지가 자연스럽게 내려오면서 나오는 실루엣과 핏을 중요시하죠.
또 새깅은 기원에서부터 반항적인 사회적 맥락이 숨어 있습니다. 이 패션은 1980~1990년대 미국 흑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돼 힙합과 스트리트 문화를 중심으로 확산했습니다. 당시에는 억압적인 복장 규범에 대한 저항, 그리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죠.
가장 흔히 언급되는 유래는 미국 교도소 문화입니다. 자살 시도나 폭력 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해 벨트 착용이 금지됐고, 수감자들에게 큰 바지가 지급되면서 자연스레 엉덩이에 걸쳐 입는 스타일이 형성됐다는 설명인데요. 다만 이를 과장된 유래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후에도 드릴, 트랩 등 다양한 랩 장르, 스트리트 컬처와 함께 새깅은 힙합의 시그니처 룩이 됐습니다. 투팍, 릴 웨인, 켄드릭 라마, 루페 피아스코 등 래퍼들뿐만 아니라 저스틴 비버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무대는 물론 파파라치 컷에서도 새깅 룩을 즐겨 입으며 대중화에 힘을 보탰죠.
물론 언짢은 시선도 이어졌습니다. 공공질서, 미풍양속 등 이유로 2000년대 일부 미국 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새깅을 금지하는 조례가 통과되기도 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폐지도 잇따랐습니다. 다만 여전히 공적이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절대 금지'에 가까운 패션으로 통하긴 합니다.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성장한 새깅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런웨이 취향도 저격하고 나섰습니다. 자크뮈스는 2020년 봄/여름(S/S) 컬렉션 이후 새깅 패션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고요. 2021년 발렌시아가는 가을 신상으로 '트롬페 로일(Trompe L’Oeil)'이라는 바지를 선보였는데요. 바지에 남성용 사각팬티를 연결해 굳이 진짜 속옷을 보여주지 않아도(?) 새깅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었죠.
2022년에는 봄/여름(S/S) 컬렉션에서 로우라이즈 열풍을 일으킨 미우미우가 새깅을 활용했고요. 반항적인 디자인을 다수 선보이면서 팬덤을 형성한 모와롤라는 아예 바지를 무릎까지 내려버리는 파격을 보여줬습니다.
이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새깅을 활용, 재해석하면서 지금의 새깅은 자유와 정체성, 그리고 젠더 다양성을 담은 현대적 스타일 변신했는데요. 벨라 하디드, 빌리 아일리시 등 인기 셀럽들의 다양한 새깅 룩이 SNS, 파파라치 컷 등을 통해 눈길을 끌고 있죠.

수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는 K팝 아이돌의 패션에서도 새깅 룩이 어렵지 않게 포착됩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이돌이 속옷 밴드를 드러내면 '논란'이 됐는데요. 일례로 르세라핌 멤버 허윤진은 지난해 2월 세 번째 미니 앨범 '이지(EASY)'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짧은 탱크톱에 반바지 버클을 풀고 밴드를 드러낸 파격적인 로우라이즈 패션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이에 앞서 뮤직비디오 트레일러에서도 과감한 팬츠리스 룩으로 눈길을 끌었던 터라 대중의 취향은 둘로 갈렸는데요. '선정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파격적이고 당당해 보인다' 등 호평도 있었죠.
분위기는 꽤 달라졌습니다. 새깅을 무대 의상에 활용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지면서 바지를 내려 입는 것도, 언더웨어를 드러내는 것도 더 이상 낯설게만 보이지는 않는데요. 박재범부터 방탄소년단(BTS) 제이홉, 웨이션 브이, 라이즈, NCT 텐과 태용, 더보이즈 주연, 엔하이픈 니키, 에스파 지젤, 블랙핑크 제니, 아이들 민니, 키스오브라이프 나띠 등 보이·걸그룹 따질 것 없이 수많은 이들이 무대와 일상에서 새깅 룩을 선보였죠.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습니다. 느낌 있는 마스크와 대비되는 구수한 사투리, '야생 끼끼'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발랄한 성격, 시원시원하면서도 세심한 퍼포먼스로 인기를 끄는 올데이 프로젝트 멤버 타잔인데요. 데뷔 전부터 새깅을 사랑해온 그는 데뷔 이후에도 새깅 패션을 선보여 팬들의 걱정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자칫 스텝 한 번 잘못 밟았다가 바지가 흘러내릴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내려 입은 와이드 팬츠, 존재감을 자랑하는 언더웨어가 도드라지죠.
정점은 예능에서 찍었습니다. 지난달 말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올데이 프로젝트의 일상이 공개됐는데요. 이날 외출한 타잔의 레이어드 팬츠 행색(?)을 보고 MC들은 "바지를 어떻게 입은 거냐"고 당황했습니다. 타잔의 바지는 3겹이 붙어 있었는데,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둔 탓에 바지가 처져 실제 언더웨어까지 노출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돼 웃음을 자아냈죠.
타잔은 덥지 않냐는 말에 "더워도 패션"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는데요. 하지만 멤버 애니는 큰 단점이 있다며 "움직이질 못해서 누군가가 옮겨줘야 한다"고 새깅 패션의 그늘(?)을 폭로해 웃음을 더했습니다. 실제 거리를 걷는 타잔은 아슬아슬한 바지춤을 잡고 걷는 모습을 보여줘 웃음바다를 만들었죠.

다만 새깅을 바라보는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갈립니다. "힙하다"는 평가와 "굳이?"라는 시선인데요. 특히 바지를 내려 입는 게 핵심이다 보니 언더웨어 노출로 인한 선정성, 또 예의 논란이 줄곧 따라붙곤 하죠.
하지만 분명한 건 새깅은 단순히 바지를 내려 입는 스타일 그 이상이라는 겁니다.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탄생한 이 스타일은 한때 '저항'과 '정체성'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 채 마냥 따라 입는 게 문제라는 '문화 도용'과 관련한 비판도 있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맥락도 새롭게 쓰인다는 해석도 공존하죠.
단순히 바지를 내려 입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자유로움과 태도를 이해하고 차용한다면 새깅도 또 하나의 '지금 시대의 옷'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국내에서는 아직은 낯설고 과감한 스타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유행은 늘 낯섦에서 시작되곤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