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된 ‘7월 일본 대지진 예언’에 혼란

1994년 6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씻어낼 수 없을 참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습니다. 서초동 하늘을 막고 서있던, 5층짜리 백화점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눈앞에 벌어진 참사에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31년 전, 우리에게 ‘재난’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마땅한 구조 장비는커녕, 참사에 대비할 만한 인력이나 구조 체계조차 없었던 때였지요.
다행히도 처참하게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사고 발생 9일 만에 생존자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11일 만에, 그리고 또 17일 만에 생존자를 찾았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한 가닥 희망이 기적으로 바뀌는 사이, 믿지 못할 촌극도 있었습니다.
구조 당국은 투시 능력을 갖췄다는 17세 이스라엘 소년을 참사 현장에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실종자의 위치를 물었습니다.
소년은 “굴착기 소음 탓에 정신집중이 안 된다”라며 작업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분초를 다투는 실종자 수색 때 구조작업이 중단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지요. 불과 31년 전,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랬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라는 구조 당국의 절박함은 이해됩니다. 그렇다 한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훗날 희생자 가족의 가슴을 또 한 번 미어지게 만들었습니다.
20년이 흐른 2014년, 승객과 승무원 약 240명을 태운 말레이시아항공(MF 370) 여객기는 인도양 상공에서 사라졌습니다. 당국은 “추락했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추락 위치를 찾는데 실패했습니다.
이때도 무속인이 등장합니다. 말레이시아 항공 당국은 공항에 이 무속인을 데려왔습니다. 이 무속인은 나름의 의식을 치르며 추락 위치를 찾아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 모습이 전 세계에 전해지자 조롱 섞인 비아냥이 이어졌습니다.
먼 옛날,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올해 7월 5일 일본 대지진을 예고한 예언자도 있습니다.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도 예언했다고 합니다. 으레 이런 예언에 당위성을 얹기 위해 뒤따르는 수식어이기도 합니다. 그의 예언과 달리 7월 5일 일본은 너무 평화로웠습니다.
과학적으로 지진은 애초에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미국지질조사국 조차 “현대 과학으로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저 확률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속과 예언자는 시대를 막론하고 등장합니다. 그리고 재앙을 거론하며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무속과 예언이 창궐하는 시대 대부분은 절박함이 극에 달할 때입니다.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상과 재난이 반복할수록 무속의 힘은 커집니다. 예언의 설득력은 커집니다.
이런 무속인과 예언자들 대부분 자신의 배를 채웁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를 준비하는 현재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니까요.
결국,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많은 무속인과 예언가가 공포를 조장합니다. 그뿐인가요. 이들은 이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지진을 예고한 예언자는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물론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행사였지요. 행사가 끝나자 재난대응 용품을 가방에 담아 ‘재난 패키지 백’을 판매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 여전히 당위성 없는 무속과 근거 없는 예언이 넘쳐 납니다.
결론적으로 무속과 예언은 '언론의 영역'이 아닙니다. 언론이 이를 다뤄야 할 이유와 명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속이 사회적 파문으로 이어질 때 이를 전달하기보다, 폐해를 지적하고 감시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게 언론의 존재 당위성이지요.
물론, 이걸 가려낼 줄 아는 '냉철한 시각'을 길러야 하는 것도 당신의 몫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