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정전 발생 30분 전부터 유럽 전력은 불안정했다. 유럽 전력 주파수는 50Hz 근처에서 살짝 벗어나며 진동했고 이베리아반도는 더 심했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자 개입으로 진동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대정전 5초 전 보호 계전기 작동으로 태양광 발전소 3개가 연달아 전력 계통에서 이탈했다. 총 2.2GW 전력이 소실되자 전력 주파수는 더 떨어졌고 재래식 발전소들도 설비를 보호하려 송전을 차단했다. 이베리아반도는 암흑으로 싸이며 교통신호와 통신도 멈추었다. 약 10시간 지속된 대정전으로 7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스페인 정전을 높은 비중의 재생에너지 탓으로 돌렸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며 원전을 퇴출하려는 스페인 정부는 발끈하며 2개월 동안 사고조사를 벌였다. 조사보고서는 과전압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제대로 예측과 대응 못 한 전력망 운영자와 과전압에 민감하게 대응한 재래식 발전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사건조사는 사고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 재발을 방지하는 활동이다. 근본 원인을 도출하려면 표면 현상에서 5층 아래까지 원인을 캐야 한다. 현상만 보고 분석을 종결하면 사건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과전압 원인을 규명하지 않은 스페인 조사는 불충분하다.
전자기학 이론을 배워도 송배전이라는 실무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각종 자료를 입수하여 정전을 해석했지만, 동일 현상도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가령 전선에 흐르는 과도 전류는 전기기기가 많이 가동된 탓일 수 있지만 누전 탓일 수도 있다. 대정전 이전에 일어난 행위 하나하나 따지다가는 전체를 볼 수 없을 듯했다. 이 사건의 근본원인은 과전압 발생이고 근본 조치는 과전압 방지 조치이다.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아 가전기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발전기를 전력선에 병입시키는 작업은 까다롭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발전소 운전원들에게 가장 난해한 작업이 계통병입이었다. 전압과 주파수가 정확히 일치해야 발전기가 전력 계통에 붙는다. 계통 주파수는 국가단위로 관리되어 한국은 60Hz이고 유럽은 50Hz이다.
발전기가 계통에 병입되어도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후에도 전력수요에 따라 발전기는 대응해야 한다. 가령 전력수요가 증가하면 송전선에 전류가 세게 흐르고 발전기 회전수가 감소하며 전력 주파수는 떨어진다. 발전기는 즉시 연료를 더 태워 회전을 유지한다. 설령 연료가 공급되지 않더라도 재래식 발전기의 묵직한 터빈은 관성 덕분에 회전력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 그러나 태양광 발전은 빛의 세기에 좌우되므로 주파수 유지기능이 약하다.
재래식 발전기의 또 하나 장점은 무효전력을 조절할 수 있는 역량이다. 무효전력은 전자를 밀치는 전압 대신 전자기파 형태의 힘이다. 무효전력은 어려운 개념으로 전문가마다 설명이 다르다. 실무적으로 접근하면 무효전력은 변압기와 전동기에서 발생하며 이들 기기를 사용하는 한 무효전력을 없앨 수는 없다. 변압기와 전동기에 채워진 대부분의 전자기파는 고유한 일을 하지만 일부는 발전기로 되돌아온다.
일로 소진되지 않고 되돌아오는 무효전력은 발전사업자에게는 성가신 존재이다. 송전선만 이용하고 돈이 되지 않으므로 발전사업자는 무효전력을 최소화시키려 노력한다. 재래식 발전기는 전자기력을 발생시켜 되돌아오는 무효전력을 가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발전기는 이 능력이 거의 없어 전압 불안정성을 야기한다.
결혼했지만 여전히 부모 도움을 바라는 자녀들이 있다. 사랑으로 볼 수 있지만 부모 지원은 세상을 복잡하게 만든다. 자립성이 약한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전력망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스마트 전력망이 나왔다. 정보 차원에서 고기능화는 권고되지만 제어 기술은 통합적 관리보다는 내버려 두어도 작동하는 자립성을 추구한다. 미래의 태양광 발전기는 과전압에 스스로 대응하는 기능을 지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