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 벌써 끝이라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귀여운 건 늘 유행이지만 요즘 귀여움의 기준은 수시로 바뀌는데요. 잠깐만 방심해도 벌써 다음 유행이 등장해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점령합니다.
중국 아트토이 전문 업체 팝마트의 캐릭터 토이 '라부부(Labubu)'도 그렇습니다. 중국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에서 열풍이 분 라부부 유행은 국내엔 비교적 늦게 상륙했는데요.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죠. 이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몸싸움까지 마다치 않을 정도로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서울 명동의 팝마트 매장 앞에서도 라부부 랜덤 박스를 사려는 이들이 충돌, 경찰이 나서 혼잡한 상황을 정리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죠.
그런데 최근엔 또 이 라부부의 인기가 식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대신 떠오르는 신흥강자의 이름도 언급되는 상황인데요. 치열한 귀여움의 전쟁터에서 고개를 드는 새 캐릭터들을 살펴봤습니다.

국내 캐릭터 유행의 계보를 따져보면 시작은 1980년대 '아기공룡 둘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수정 작가의 만화에는 둘리부터 도우너, 또치 등 다양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를 활용해 문구류, 애니메이션, 게임, 광고 등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에 존재했던 캐릭터들은 주로 만화책, 신문 일러스트 등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둘리는 브랜드·상품·라이선스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확장한 사례인데요. 한국 캐릭터 상품화의 신호탄이자 지식재산권(IP) 산업의 원조격 존재로 꼽히는 이유죠.
이후론 대중적 인기를 끈 캐릭터들이 잇따라 등장했습니다. 2000년대 인터넷과 애니메이션 기반 캐릭터들은 세계로 무대를 확장했죠.
그중에서도 '마시마로'가 대표적입니다. 하얗고 뭉실뭉실한 몸, 통통한 볼살, 일자로 처진 눈이 킬링 포인트인데요. 이 캐릭터가 유명해진 후로는 실눈을 가진 사람들의 별명이 '마시마로'가 될 정도로 큰 인지도를 자랑했습니다.
마시마로는 애초 유아용 캐릭터였으나, 당시 인기를 끌던 영상 형식인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았는데요. '엽기토끼'라는 애칭도 얻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마시마로는 세계로 향했고 다양한 캐릭터 상품과 게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출된 캐릭터 상품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게 됐습니다. 만두머리 소녀 '뿌까' 역시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국적 인기를 끌면서 해외 진출까지 성공했죠.
이후 '캐릭터 소비'는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선 '라인프렌즈'와 '카카오프렌즈'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콜라보)과 상품군으로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캐릭터는 유아용에 머물지 않고 성인 소비자들의 일상에도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요. 브라운, 라이언, 춘식이 등 이름은 물론 서사까지 지닌 캐릭터들이 스마트폰 케이스, 문구류를 넘어 브랜드 협업이나 팝업스토어 등 오프라인 영역까지 진출, 캐릭터 IP의 위상을 바꿔놨죠.
최근에는 산리오캐릭터즈에 이어 치이카와, 빤쮸토끼 등 일본풍 캐릭터 감성이 사랑받았는데요. 뜨겁디뜨거운 여름인 만큼 태닝 버전의 캐릭터들도 사랑받았습니다. 하와이 여행 필수 기념품로 꼽히던 '태닝 키티'뿐 아니라 '태닝 포차코', '태닝 폼폼푸린' 등이 독특한 색으로 관심을 끌면서 올리브영이 '산리오캐릭터즈 협업 캠페인' 일환으로 '산리오캐릭터즈 태닝 에디션'을 출시 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한국을 홀린 캐릭터, 라부부로 유행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팝마트의 블라인드 박스 전략과 한정판 전략, 공격적인 바이럴로 열풍을 일으킨 이 캐릭터는 단순한 귀여움을 넘어선 '재테크형 소장품'으로도 주목받았는데요. SNS 인증샷은 기본이고 리셀가까지 형성되며 유행의 정점을 찍고 있죠.

요즘 인기를 끄는 캐릭터를 설명할 땐 단순히 '귀엽다'는 이유 하나만으론 부족합니다.
우선 외형만 봐도 "이게 귀여운 거 맞아?"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과거의 인형들이 동글동글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였다면, 라부부를 중심으론 못생긴 매력의 캐릭터들이 오히려 주목을 받는 모습이죠. 과장된 표정이나 행동 탓에 '밈(meme)'으로도 활용되면서 시선을 끕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지에선 캐릭터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대입하는 등 2차 창작도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소비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팝마트의 블라인드 박스처럼 '뽑기'와 '수집' 자체가 놀이가 된 구조 속에서, 희소성이 높은 캐릭터는 리셀 시장에서 몇 배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18일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라부부의 거래량 폭증과 함께 올해 상반기 팝마트의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남성은 15만1570%, 여성은 13만4356% 증가했습니다. 인기 모델의 경우 정가 대비 2100% 높은 프리미엄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답니다.
글로벌 셀럽들의 인증, 직접 꾸미고 재해석하는 팬덤 문화가 더해지면서 유행은 그야말로 폭발했습니다. 블랙핑크 리사도 라부부를 인증했고, 래퍼 이영지는 자신의 SNS를 통해 라부부 언박싱 영상을 게재했죠. 다만 이영지의 경우 웃지만은 못할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시크릿 제품이 나와 좋아하던 것도 잠시, 이내 불법 복제제품인 '짭부부'로 밝혀져 절망하는 모습이 그려진 거죠. 아일릿 멤버 원희도 가짜 라부부를 구매한 뒤 허망한 얼굴을 공개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또 개인이 직접 만든 인형 옷과 액세서리를 공유하거나 판매하는 커스터마이즈 문화도 열풍에 불을 댕기고 있습니다. 최근엔 '덕질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다이소도 10㎝ 인형 전용 옷을 출시해 화제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라부부를 무작정 매입하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벌써 일각에서는 "라부부? 이미 유행 정점은 찍었다"고도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음 주자의 이름도 일찍이 거론된 상황입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같은 팝마트의 '크라이베이비(Crybaby)'인데요. 생김새로만 보면 "라부부보다도 못생겼다"는 말을 듣는 캐릭터입니다.
태국 작가 몰리 일롬은 팝마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사랑하던 반려견을 떠나 보내고 이 캐릭터를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크라이베이비를 꼭 아기처럼, 혹은 사람처럼 만들려던 건 아니었다. 제게 크라이베이비는 감정 그 자체였다"며 "우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어떤 때는 누군가가 '울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줬으면 싶잖나. 누구나 울 때가 있다"고 설명했죠.
특히 크라이베이비는 지난해 파워퍼프걸로 협업한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용감한 영웅 파워퍼프걸로 변신해 모두에게 응원을 전한다는 콘셉트로 제작됐죠.
리사는 라부부 키링 옆에 크라이베이비 키링을 달았고요. 아이들 민니, 아이브 레이도 크라이베이지 제품을 소장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팝마트에서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캐릭터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애니메이션 '스폰지밥' 속 캐릭터인데요. 스폰지밥, 뚱이, 징징이, 다람이, 집게사장, 플랑크톤 모두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름조차 없는 캐릭터가 주인공이 됐는데요. 그저 '물고기 주민'으로 통칭되는 캐릭터들이 조명을 받았죠.
팝마트는 정식 라이센스를 받아 스폰지밥 속 비키니 시티의 감초 캐릭터들을 키링으로 제작했는데요. 공식 상품명은 '스폰지밥 비키니 시티의 엉뚱한 친구들 인형 키링'. 역시 블라인드 박스로 판매돼 박스를 열기 전까지는 어떤 물고기 친구가 나올지 모릅니다. 현대인이라면 낯설지 않은 어딘가 힘 없고 멍한 얼굴. 네티즌들은 "학교 가는 내 모습과 비슷해서 탐난다", "회사 책상에 두고 일하고 싶다" 등 반응을 보였는데요. 안타깝게도 팝마트 공식 스토어에서 품절입니다.
일부 크라이베이비 제품, 그리고 엉뚱한 친구들 키링은 크림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습니다. 특히 크라이베이비 표범 냥이 시리즈는 정가 1만7000원이지만 700% 이상 오른 13만9000원대에 거래 중이고요. 정가 1만3000원인 엉뚱한 친구들 키링도 2만~4만 원대에 거래되는 상황입니다.
이 두 시리즈의 공통점은 단순한 귀여움이 아니라 희소성과 언박싱의 재미, 커스터마이즈 문화, 그리고 SNS 밈화 가능성에 있습니다. 뽑기 후기, 한정판의 기쁨, 커뮤니티 등에서 유행이 번지면서 캐릭터 하나가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되는 모양샌데요. 다음 유행은 얼마나 독특하고 얼마나 웃기며, 얼마나 인증 욕구를 자극하느냐에 달렸달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