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발 통상 압박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 723만 대 중 미국 시장에서만 약 171만 대를 판매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물량이 국내에서 생산돼 수출된 차량이다. 고율 관세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단순한 자동차 가격 인상에 그치지 않고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과 공급망 전반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부품사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대모비스, 만도, 한온시스템 등 주요 부품업체들은 미국 완성차 브랜드뿐 아니라 현대차·기아의 현지 공장에도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핵심 부품은 여전히 국내 생산 후 수출하는 방식이 유지되고 있어 이번 관세 조치가 적용되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전망이다. 특히 중소·중견 부품업체는 현지 생산 인프라나 협상력 측면에서 대기업에 비해 훨씬 취약하다.
여기에 미국 항만 당국이 외국산 차량을 운송하는 선박에 추가 항만료 부과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물류비 부담까지 덮치며 전방위적인 비용 상승 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관세, 물류비, 원자재 가격까지 삼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배경이다.
미국의 압박은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반도체, 배터리, 구리 등 주요 전략 품목에도 최대 50%에 달하는 초고율 관세 부과가 예고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통해 자국 내 제조 기반 복원, 즉 리쇼어링 전략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곧 단기적 통상 갈등을 넘어 공급망 재편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들 핵심 소재에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수입 단가 상승이 차량 제조 원가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북미 실적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최대 자동차 보험 비교 플랫폼인 ‘인슈리파이(Insurify)’는 관세가 반영될 경우 현대차 차량 가격이 평균 22%, 기아는 21% 인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미 북미 현지 생산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울러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동, 아세안, 중남미 등으로 수출 비중을 조정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시장에서는 친환경차와 프리미엄 세단 중심의 고부가가치 전략을 전개 중이다. 이러한 시장 확대 전략은 단기적 실적 방어와 함께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부도 정책적 대응에 나섰다. 중소 부품사의 미국 현지 진출 확대를 위해 금융·세제 지원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미 통상협력채널을 통해 외교적 대응을 병행 중이다. 한국무역협회, 코트라 등 유관기관은 현지 시장 정보 제공과 컨설팅 확대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일련의 대응만으로는 근본적 한계를 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통상 압박은 특정 정부의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공급망 재편을 축으로 한 구조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은 이번 관세 위기를 단기적 변수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글로벌 생산 체계 자체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어디서 만들고 누구와 연결돼 있는가’를 다시 묻고 있다. 미국 중심의 수출 전략은 점점 더 많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이번 관세 이슈를 계기로 공급망 다변화, 현지화, 기술 고도화 등 체질 개선이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불확실성의 시대를 버티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