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몰입도↑전망⋯현장에선 ‘인건비 부담’ 우려도

직장인 이철현(가명·43) 씨는 회사가 지난달부터 ‘주 4.5일제’를 시범 도입한 이후 삶의 리듬이 완전히 바뀌었다. 금요일 오전 업무에 집중하고 오후부터는 쉴 수 있게 되면서다. 오후 반일의 여유는 아이와의 시간, 부부와의 식사, 짧은 여행으로 채워지고 있다.
‘금요일 오후’의 재편이 일상 속에 스며들면서 유통 산업의 소비 지형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통업계는 정부의 주 4.5일제 도입 논의를 ‘호재’로 보고 있다. 국민들의 소비 시간이 늘면서 유통채널 전반에 긍정적인 매출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4.5일제와 유사한 유연근무제도를 자체 시행 중인 일부 기업은 기존 제도에 대한 직원 만족도, 업무 효율성 등이 높은 만큼 주 4.5일제 시행 시 업무생산성 저하 관련 잡음도 적을 것으로 본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주 4.5일제 도입으로 소비 진작 수혜를 입을 업종은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쇼핑몰 △호텔 등이 꼽힌다. 대부분 오프라인 소비처 위주의 사업을 전개하는 곳이다. 기존보다 반나절 가량 소비할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이른 퇴근길, 혹은 여행지 등으로 이동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증가할 전망이다.
편의점 A사 관계자는 “오피스가 밀집한 도심 점포의 매출은 줄어들 겠지만, 그만큼 복합쇼핑몰 내 점포와 휴양ㆍ관광지 인근 점포매출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전체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업계는 평일과 주말의 경계선이 모호해짐에 따라 변화할 고객 라이프스타일 변화 전반에 주목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 4.5일제가 시행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이 ‘주말’로 구분하는 개념도 바껴 문화 활동, 소비 활성화가 예상된다”며 “(도입이 가시화 한다면) 관련 프로모션이나 콘텐츠 개발 고민에 착수할 것”이라고 했다.
주 4.5일제가 시행되면 오히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집 근처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쇼핑 수요도 늘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편의점 B사 관계자는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며 “주택가 상권 편의점, 쇼핑몰 등의 매출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여가 시간만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여건과 소비 여력이 동반 상승해야 실질적인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홈쇼핑 시청 및 주문 증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4.5일제를 실시하면 근무 만족도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복지 차원에서 유연근로제 등을 시행 중인 일부 기업들 중심으로 이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미 현대백화점그룹은 2017년부터 2시간 단위로 연차를 사용하는 ‘2시간 휴가(반반차 휴가)’를 도입해 8년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 사이에서 호응이 좋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거나 급하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짧은 휴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오후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빨리 퇴근해야 할 때 유용하게 활용한다”며 “휴가 시간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업무 효율에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부분적 주 4일 근무제와 1시간 단위 연차휴가 제도를 도입한 호텔∙리조트 기업 대명소노그룹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업무 몰입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만족도가 높다.
3대 편의점사 중 한 곳은 9년째 정규직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 주 금요일에 ‘자기계발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이 2시간 개인 연차를 내면 회사가 2시간의 연차를 지원해 사실상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 내부에선 충분한 휴식시간이 보장돼 업무 몰입도를 높이는 복지 제도로 호평받고 있다. 주 4.5일제가 본격 도입되면 이 같은 긍정 효과가 전 사원에게 확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다만, 일각에서는 주 4.5일제 도입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통업은 캐셔나 물류 직원, 아르바이트 등이 많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업종이라, 주 4.5일제 도입 시 인건비 상승 등이 최대 난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사람이 사람을 대면하는 영역이라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한 자동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주말에 소비 수요가 가장 큰 백화점과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에서 근무 공백을 채울 시간제 근무자를 추가 채용해야 하는 등 인건비 상승 요인이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