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ㆍ예술 결합⋯스마트공간으로 진화

기술이 예술경험의 요소로 부각
데이터윤리 등 통제체계 갖춰야
도시는 삶의 무대이자 기억의 저장소다. 그중에서도 미술관은 도시의 정체성과 감수성을 집약하는 핵심 문화공간으로, 예술과 시민이 조우하는 상징적 장소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확산은 이러한 공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미술관은 더 이상 조용한 감상의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관람객과 예술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기술 기반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대표작 모나리자 옆에 QR코드를 설치해, 관람객이 이를 스캔하면 ‘모나에게 물어봐 챗봇(Ask Mona)’을 통해 작품에 대해 텍스트 또는 음성으로 실시간 질의응답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관람객은 단순 수용자를 넘어, 해석과 탐색의 주체로 전환된다. 인근 퐁피두센터는 이 챗봇에 시각 인식 기능을 결합해, 사용자가 작품 사진을 앱에 업로드하면 큐레이터가 검토한 해설과 관련 미디어 자료를 즉시 제공하는 기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오르세미술관은 고흐의 자필 편지 900여 통을 AI에 학습시켜 구현한 프로젝트 ‘안녕 빈센트(Hello Vincent)’를 통해, 전시장 내 인터페이스에서 고흐의 목소리로 관람객과 대화하는 체험을 가능케 했다. 예술가의 내면 세계를 기술로 재현한 이 실험은 감상의 차원을 확장시킨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The Night Watch·1642)’의 손실된 가장자리 부분을 원본 스캔과 17세기 복제본을 기반으로 AI에 학습시켜 픽셀 단위로 복원하고, 이를 별도 패널로 전시했다. 관람객은 보다 완전한 구성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반 고흐 미술관은 다국어 피드백 약 1500건을 매월 수집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기반의 자연어처리 기술로 분류·분석하고 전시 기획 및 관람 서비스 개선에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주요 미술관들은 전시 해설, 예술가 재현, 유물 복원, 관람객 분석, 디지털 큐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AI 기술을 전략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기술은 단순 보조수단을 넘어, 미술관의 운영 방식과 관람 문화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 제고를 넘어, 기술이 예술 경험의 구성 요소로 내재화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뜻한다. 특히 팬데믹 이후 비대면 전시 수요가 급증하면서, AI는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관도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는 실질적인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
첫째, 주요 작품 옆에 다국어, 음성, 텍스트 기반의 AI 챗봇을 설치해 관람객이 해설을 능동적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방향 오디오가이드를 넘어, 관람자가 질문하고 AI가 맥락 기반으로 응답하는 방식은 감상의 질적 깊이를 심화시킬 수 있다.
둘째, 지역 작가의 창작 노트, 인터뷰, 일기 등을 AI에 학습시켜 ‘작가 대화방’을 운영하면, 관람객은 작가의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관람의 개별화를 촉진하고, 동시대 예술가와 시민 간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기여한다.
셋째, 손상되거나 유실된 유물에 AI 복원 기술을 적용해 고해상도 디지털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VR이나 AR로 시각화하면 관람객은 단순 감상을 넘어 보존과 복원의 과정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이는 관람객을 공동참여자로 전환시키는 교육적 전략이기도 하다.
넷째, 관람객 리뷰 및 설문 데이터를 AI로 실시간 분석해 인기 전시 유형과 선호 장르를 파악하고, 이를 전시 및 교육 콘텐츠 기획에 반영해야 한다. 이는 관람객 중심의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다섯째, 디지털 아카이브에 자연어 검색 기능을 도입해 관람객이 작품명이나 키워드로 질문하면, 관련 유물, 논문, 미디어 자료 등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인터랙티브 큐레이션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문가 중심의 정보 독점을 해소하고, 일반 관람객의 자율적 탐색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여섯째, 전시실 내 가이드 앱에 이미지 인식 기능을 연계하면, 관람객이 작품을 촬영하는 즉시 AI가 작품명을 식별하고, 해설, 영상, 음성 안내를 자동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는 외국어 사용자, 시청각 장애인, 어린이 등 다양한 관람 계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이러한 기술 도입은 기술 그 자체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공정성, 데이터 윤리 등 제도적 기준과 거버넌스 체계가 함께 수립되어야 한다.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과 편향 가능성에 대한 점검은 전문 큐레이터와 기술 전문가가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한 학예연구사와 IT 전문가를 위한 AI 리터러시 교육, 산학협력, 공동연구 기반도 병행 구축되어야 한다. 기술은 외부에서 단순히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기관 내부의 자율적 활용 능력과 결합될 때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관람객의 만족도와 연구 성과를 동시에 향상시키는 지속 가능한 혁신은 단순한 기술 수용에 머물러서는 불가능하다. 핵심은 기술을 어떻게 주도적으로 활용하고, AI를 미술관의 전시, 교육, 운영 전반에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대응에 소극적인 문화예술기관은 디지털 전환의 흐름에서 점차 소외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미술관이 기술 기반의 공공성과 예술적 깊이를 확장하며, 세계적 수준의 스마트 미술관으로 도약할 결정적 기회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이는 선택이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필수 과제다.
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