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AI발 해고' 잇따라
한국도 '조용한 구조조정' 확산

글로벌 빅테크들이 최상위 인공지능(AI)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거나 원천 기술 보유 업체에 수천억 원을 쏟아붓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AI 기반의 자동화 확산으로 대규모 해고 바람이 불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실리콘밸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AI 기술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고용 지형 변화가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다.
6일 글로벌 고용 데이터 분석업체 레이오프닷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인텔 등 150개 글로벌 테크기업에서만 7만2808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과거 개발·기술 인력을 놓고 대규모 채용 경쟁을 벌였던 빅테크들이 이제는 AI 도입을 계기로 인력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은 고용시장 특성상 대규모 해고는 드물지만, 신입 채용을 축소하거나 사실상 중단하는 ‘조용한 구조조정’이 IT 업계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신입 개발자 연봉이 8000만 원까지 치솟는 ‘인재 쟁탈전’이 벌어졌지만,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업무 자동화로 생산성이 높아지며 개발 인력 수요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최영근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부 대기업은 채용을 소규모로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이미 채용 프리징(동결)에 들어간 상태”라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개발자 확보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던 기업들이 이제는 AI로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 채용은커녕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시장 한파는 대학가에도 전이되고 있다. 한때 대기업을 골라 입사하던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 이제는 취업 불안을 호소하는 상황으로 전환됐다. 최 교수는 “2년 전만 해도 컴공 학생들이 ‘어느 대기업을 갈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대학원 진학이나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AI 도입이 더 빨라질 경우 개발자뿐 아니라 사무직·영업직 등 전통적인 ‘고용 안정 직군’까지 일자리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AI와 한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일자리의 51%가 AI의 영향권에 있다. 이 가운데 24%는 AI와의 보완적 협업을 통해 생산성 제고가 가능한 직군이지만, 나머지 27%는 AI에 의해 핵심 업무가 대체될 가능성이 큰 직군으로 분류됐다.
특히 컴퓨터 시스템 전문가, 회계·경리 사무직, 통신 관련 판매직 등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 비중이 높아 대체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실직 및 임금 하락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의사·한의사·치과의사, 고객 서비스 관리자, 대학교수, 기업 고위임원 등은 AI와의 협업을 통해 오히려 임금 상승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높은 직군으로 평가된다.
최 교수는 “과거 자동화가 제조업 일자리를 위협했다면, AI는 화이트칼라 일자리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훨씬 더 크다”며 “앞으로 수년간 기술 적응이 어려운 계층을 중심으로 구조적 감원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