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기준 브레턴우즈 체제 종식 이후 최악 성적
“트럼프 2.0 불규칙한 정책의 희생양 돼”
관세 불확실성·연준 압박·부채 확대 우려 등에 달러 매력↓

올해 상반기 미국 달러화 가치가 반세기 만에 가장 크게 하락했다. 3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주요 6개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지수는 올들어 지금까지 10.8% 폭락했다.
이는 상반기 기준으로 미국 달러 가치를 금에 맞추고 다른 통화 환율은 달러에 고정한 금본위제 ‘브레턴우즈 체제’가 종식됐던 1973년 14.8% 급락한 이후 52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이다. 상·하반기 통틀어 6개월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달러는 유로화 대비 13.8% 떨어졌다. 스위스프랑과 영국 파운드화에 대해서는 각각 14.4%, 9.7% 밀렸다.
프란체스코 페솔레 ING 외환 전략가는 “달러화가 트럼프 2.0의 불규칙한 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하는 관세 정책,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기준금리 인하 압박 등이 안전 자산으로서 달러의 매력을 끌어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금리 인하를 재차 압박했다. 그는 국가별 기준금리 순위표 이미지에 자필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언제나처럼 너무 늦다”며 금리를 현재 연 4.25~4.50%에서 1% 이하로 대폭 낮출 것을 요구하는 글을 써서 올렸다. 이러한 압박은 연준 독립성 약화 우려를 제기하면서 달러화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추진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아젠다 포괄 법안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 역시 달러화 약세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해당 법안이 연방정부 부채를 급격히 늘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현재 법안대로라면 향후 10년간 미국 국가부채가 3조3000억 달러(약 4500조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초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이 미국 이외 국가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주고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달러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전이던 1월 중순에는 달러지수가 110을 넘어 연중 고점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몇 달 새 세계 금융 시스템의 중심인 미국 역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브렌던 페이건 블룸버그통신 외환 전략가는 “미국 달러화는 최근 수년래 최저치로 떨어진 데 이어 앞으로도 추가 하락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와 경제지표 부진, 정책 불확실성 등이 달러화에 계속해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채권운용사 핌코의 앤드루 볼스 글로벌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큰 위협은 없지만 그렇다 해서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전 세계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에 대한 헤지(위험 회피)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