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칼럼] 트럼프의 딜레마가 된 ‘트리핀 딜레마’

입력 2025-06-2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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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기축통화에 사용료…괴이한 발상
대미수출액의 10% 기본관세 부과
재정건전화·소비축소가 근본 대책
불확실성 시대 ‘통화 혼란’ 대비를

세계사적으로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이라면 두 차례의 어처구니없는 세계대전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말한다면 무엇보다도 1930년대의 대공황이 아닐까 싶다. 대공황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분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경제적인 사고에서 20세기의 가장 빛나는 지성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은 무엇보다도 통화정책의 실패를 지적하였다. 대공황이 진행되던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의 실질통화량이 25%가량 감소하고 그 결과 경기침체와 대공황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기실 그와 같은 결과를 대공황이 발생하기 바로 전 이미 지적한 학자가 있었다. 폴란드의 은행가이자 학자인 펠릭스 므위나르스키(Feliks Młynarski, 1884~1972)는 1929년 출판된 한 저서에서 금본위제도가 그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설파하였다. 미국의 제한된 금보유량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던 금본위제도에서 팽창적인 통화정책이 실시되면 결국 통화발행액이 금보유량으로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하게 된다. 그와 같은 임계점에 다다르면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미국에 금 태환을 요구하게 되고 위기가 초래된다. 따라서 미국은 긴축적인 통화정책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본위제도의 불안정성에 대한 그의 예측은 결국 적나라하게 실현되었다.

20세기 후반의 세계거래질서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7월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뉴 햄프셔 주의 작은 도시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결정된 소위 브레턴우즈 체제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핵심은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금본위제도와 고정환율제도 그리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의 설립이었다. 대공황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체제였다.

므위나르스키의 예언은 1950년대 후반 다시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벨기에 출신의 경제학자 트리핀(Robert Triffin, 1911~1993)이 나섰다. 1959년 미국 의회의 증언과 1960년의 저서를 통해 그는 금본위제도의 위기와 그에 이은 공황의 가능성을 주장하였다. 소위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이다. 트리핀의 예언은 일부 실현되었다. 그의 증언이 있은 이후 10년, 공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금 태환을 중지함으로써 공식적으로 금본위제도를 폐기하였다. 세계 경제는 큰 혼란에 빠졌고 1973년에는 공식적으로 변동환율제도가 도입되었다. 일찍이 프리드먼이 주장한 바와 같이 환율의 가격기능이 강조되는 시대가 이르렀다.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한 세계거래질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트리핀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자본계정(capital account)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변형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세계거래질서를 위해서는 국제무역에서 미국이 계속 적자를 봐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자본계정의 문제가 국제무역으로 전위된 것이다. 그리고 세계금융시장에 안전자산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국채(재정적자) 발행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론적으로 딱히 맞는 주장은 아니지만 매우 직관적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평균적으로 미국이 무역적자도 재정적자도 경험하지 않았다. 따라서 실증적으로도 옳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같은 인식이 트럼프 정부 대외경제정책의 배경이 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재정의 건전화와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소비비중의 조정이라는 것이 이론가들의 정책제안이지만 정책의 근본이 관세에 맞추어져 있다. 국제통화로서 달러를 사용하는 데 대하여 미국에 수출하는 대금의 10%를 비용(관세)으로 무조건 지급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참으로 괴이한 정책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정책은 미국의 경제적인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거대한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세계 소득의 40%를 생산하던 또 다른 미국이 다시 등장하기까지 국제통화의 문제는 오래 동안 세계경제를 괴롭힐 것이다. 준비하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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