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유가 오버슈팅 가능성 적어”
“최근 급등한 종목 차익실현…반도체 호실적 기대”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격화하며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내외 자본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제 정세 불안이 국내 주식시장에 미칠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단기 조정은 유의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성장을 이어가는 업종을 중심으로 한 분산투자를 추천했다.
18일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 자산운용사 운용본부장 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간 분쟁에 따른 핵심 변수로 국제 유가 급등 여부를 꼽았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져 국제 유가가 ‘급등(오버슈팅)’ 하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고, 국채 금리가 오르면 증시 변동성도 확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물가 상승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조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은 적다고 전망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글로벌 원유 공급이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란 원유 수출의 90% 이상이 중국향(向)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최대 피해국은 중국”이라며 “이란이 해협 봉쇄로 다른 중동 산유국을 적으로 돌릴 이유가 없어 이번 전쟁이 원유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증시의 추세적 하락 변수였던 핵심 원인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금수 조치”라며 “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이 지난해 4월부터 빚어졌음에도 주식시장이 건재한 이유는 수출 해협 봉쇄와 이란 원유 생산시설 폭격 등 요인이 배제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진호 NH아문디자산운용 주식운용부문장은 “지난해 4월 이스라엘과 이란 보복전 당시 국내 증시는 연준 긴축 우려를 반영하며 한 달간 하락했지만, 이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을 웃돈 데 따른 것이었고 최근 연준의 완화 방향성도 달라진 점이 없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중동 정세 불안에도 비교적 양호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국내 증시가 3000포인트(p) 돌파를 계속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상승세는 대외 변수에 연동된 것이라기보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결을 위한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광혁 LS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애당초 ‘3000p’ 기대감은 국내 기업 실적이 아니라 코스피 밸류에이션(가치)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이 나오며 형성됐다”며 “글로벌 이벤트와는 다른 양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예상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확대되지 않는 한 증시 움직임에 큰 파급력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동발(發) 리스크가 국내 증시에 단기 조정을 부를 여지는 있어 이를 회피하려면 업종과 종목을 선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코스피가 급등한 만큼 상승 폭이 컸던 자산군의 비중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국내 주식에 대해 차익실현 성격의 매물을 단기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며 “쏠림이 있는 자산을 추종하기보다는 기존 자산을 고수해야 하며, 주식 45%(국내 20%·미국 25%), 채권 25%(국내 15%·미국 10%), 대체자산 30% 자산 배분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유가증권시장 수익률을 주도하는 분야를 주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윤 센터장은 “정보기술(IT) 업종은 바닥을 통과해 회복하는 추세”라며 “이 중에서도 섹터 내 중심인 반도체는 2분기 실적이 우호적일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금과 같은 안전자산이나 장기적으로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큰 섹터로 피신하는 선택지도 있다. 남용수 한국투자신탁운용 ETF운용본부장은 “투자 기간이 짧을수록 안전자산 비중을 높여 가는 것이 좋다”며 “구조적 수혜가 예상되는 인공지능(AI)과 전력인프라 관련 자산군은 꾸준히 들고 가도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