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표 약혼식? 국내 OTT 시장에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CJ ENM의 ‘티빙’과 SK텔레콤 주도의 ‘웨이브’가 공동으로 ‘더블 이용권’라는 통합형 요금제를 선보인 거죠. 16일 오후 2시부터 판매를 시작한 이 요금제는 양 플랫폼의 오리지널 콘텐츠와 주요 방송 채널, 스포츠 중계 등을 하나의 구독으로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는데요.
표면적으로는 획기적인 변화입니다. ‘더블 이용권’은 국내 OTT 업계 최초의 결합 상품으로, 티빙을 대표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부터 tvN·JTBC·OCN·Mnet 등 주요 인기 채널의 라이브 방송·최신 주문형비디오(VOD)·KBO·KBL리그 라이브 스포츠 중계·쇼츠 서비스·애플TV+브랜드관은 물론, 웨이브 오리지널 및 독점 해외시리즈, MBC, KBS 지상파 콘텐츠까지 다채로운 콘텐츠 라인업을 품었는데요. 요금제는 총 4종입니다. 가장 저렴한 ‘더블 슬림’은 프로모션 기간 한정으로 월 7900원에 제공되며 가장 비싼 ‘더블 프리미엄’은 1만8900원으로 책정됐죠. 개별 구독 합산 소비자가 대비 최대 39%까지 할인된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진짜’ 통합은 아닌데요. 그렇게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블 이용권’은 단일 플랫폼이 아닌, 각자의 계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묶은 요금제이기 때문인데요. 티빙과 웨이브는 여전히 별도의 앱을 사용해야 하고 로그인, 콘텐츠 설정, 시청 이력 등도 통합되지 않죠.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티빙과 웨이브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함에 따라 진행되는 ‘특별 요금제’이기 때문인데요. 정식 혼인 전 약혼식에 찾아온 이들에게 건네는 이벤트인 셈이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티빙 웨이브 요금제가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올 만큼 화제가 됐는데요. 하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컸습니다.
요금제부터 뜯어보자면 더블 슬림은 티빙 광고형(1인 이용·광고 포함)과 웨이브 베이직(1인·HD 화질)을 조합한 것으로, 다운로드 기능이 없고 동시 시청도 불가능한데요. 더블 베이직은 광고가 빠진 티빙 베이직과 웨이브 베이직의 조합으로 광고는 빠지지만 여전히 1인 이용권입니다. 함께 보기 위해선 역시 돈을 더 써야 하는데요. 더블 스탠다드(월 1만5000원)는 양 플랫폼 모두 2인 동시 시청이, 가장 상위 상품인 더블 프리미엄(월 1만9500원)은 티빙 고화질(4K 일부)과 웨이브 최고화질로 4인 시청이 가능한데요. 해당 요금제 모두 각각의 플랫폼을 따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번 요금제에서는 연간 요금제가 없이 월간만 있는데요. 특히 가장 저렴한 월 요금제는 프로모션이 끝나는 9월 30일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꼽힙니다. 만약 연간 티빙 요금제를 이용 중인 고객이라면 이를 해지하고 다시 월마다 결제되는 요금제를 선택해야 하는데요. 신규 가입자를 노린 요금제로 기존 고객들에겐 조금 불친절합니다. (월간 이용자는 구독 전환 가능)
거기다 모든 이용권은 공통적으로 SBS 콘텐츠를 포함하지 않는데요. 웨이브는 과거 SBS와 독점 계약을 맺고 주요 드라마와 예능을 제공했으나, SBS가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그 범위가 축소됐죠.
그렇기에 기존 구독자와 새로 가입하려는 이들에게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아닌데요. 다들 이 묘한 엉성함에 고개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앞서 지난해 12월 탄생한 ‘애플TV+ 브랜드관’ 론칭 때문인데요. 티빙은 Apple TV+(애플TV+)와 제휴를 맺고, 자사 앱 내에 '애플TV+ 브랜드관'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죠. 당시에도 파친코 시즌2 등 일부 글로벌 콘텐츠가 추가됐지만, 이 역시 프리미엄 요금제 사용자만 이용할 수 있었는데요. 애플TV+ 시청을 기대했던 기존 연간 이용자들은 더 높은 요금제 재결제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죠. 이번 요금제에서도 ‘더블 프리미엄’에서만 애플TV+를 시청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 경험 측면에서는 여전히 ‘두 개의 OTT’를 각각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아 있는 ‘결합은 했으나 합쳐지지는 않은’ 묘한 공존이 이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이번 시도가 갖는 산업적 의미가 작진 않은데요. 글로벌 OTT 플랫폼이 국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국내 토종 OTT끼리의 연합은 ‘생존을 위한 전략적 공조’로도 해석될 수 있죠.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등과의 경쟁에서 콘텐츠 자체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상황에서 가격과 접근성을 앞세운 묶음 전략은 향후 새로운 구독 모델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위는 이 합병을 조건부 승인하며 내년까지 요금 인상을 하지 않는 조건을 부과했는데요. 덕분에 사용자들은 당분간 안정적인 가격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죠.
과거 추억의 한국 콘텐츠를 더 많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인데요. 여러 제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두 OTT를 구독하는 것보다는 ‘더블 요금제’가 훨씬 저렴한 건 사실입니다.
‘더블 프리미엄 요금제’는 티빙과 웨이브 각각의 프리미엄 요금제를 결합한 형태로, 이론상 최대 8명(4명+4명)이 동시에 시청할 수 있고, 두 플랫폼 모두 4K 화질을 지원합니다. 수치만 보면 넷플릭스 프리미엄(1만7000원, 4인 4K)보다 공유 인원이 2배 많고 콘텐츠 폭도 넓은데다 실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셈이죠.
거기다 지난해 이용자 수 기준 OTT 시장 점유율은 넷플릭스(33.9%), 티빙(21.1%), 쿠팡플레이(20.1%), 웨이브(12.4%) 순으로, 티빙·웨이브의 점유율을 단순 합산하면 넷플릭스를 넘어설 수 있는데요. 해외 OTT들의 경쟁 속 토종 OTT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다만, 실질적인 통합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자는 여전히 두 개의 앱을 넘나들며 각각의 플랫폼에 적응해야 하는데요. 거기다 이용자들이 OTT를 여러 개 구독하는 추세에서 티빙·웨이브 통합 요금제가 시장 점유율을 뒤흔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죠. 화제성만큼 이용자들을 더 끌어모을 수 있는 대형 OTT가 될 수 있을까요? 사용자들의 이동을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