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중지법 등 되레 화합 역행할 뿐
정부역할 줄이고 선별 복지 나서야

지난 6월 3일 실시된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자의 49.42%를 얻어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이튿날 대통령에 취임했다. 41.15%를 획득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선언으로 이 후보의 당선을 축하했다.
각 후보가 내건 공약은 그의 국정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서, 그중 당선자의 공약은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대체적 방향을 나타낸다. 비록 그것이 논리적으로 틀리더라도 그렇다. 따라서 다양한 유권자의 선호를 반영하는 것이 민주정의 장점이라면, 유권자의 판단 능력이 부족하여 엉뚱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민주정의 함정이다. 그래서 민주정의 성공 여부는 유권자의 인간 세상의 운행 이치에 대한 이해 정도에 달려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 일성으로 국민화합을 선언했다. 아주 바람직하다. 그런데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큰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사는 것이 화합이라면, 이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통해 가장 잘 달성된다. 인간의 서로 다른 장점과 특기가 협동과 화합의 출발점이 되는데, 이를 가장 잘 융합하는 것이 시장경제 체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의 고유한 목적을 위해 행동하며, 이를 위해 남의 도움을 받고 또 남에게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 지켜야 할 행동 규칙에 따른 사회 질서가 만들어져 발전하며, 각 개인은 이 질서 안에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협동과 화합을 이룩한다.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특정 목적의 정책을 시행하면 이런 사회 질서를 왜곡하고 이익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을 가름으로써 사람들 간의 협동과 화합을 해친다.
새 정권이 애써 공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기본 사회는 각 개인이 자기의 장점과 특기를 바탕으로 열심히 일할 유인을 꺾고 정부에 의존하려는 비루한 정신을 싹틔워 강화한다. 핀란드의 기본 사회 실험 중단과 스위스의 기본 소득 지급에 관한 국민투표 부결은, 그런 점을 우려하고 내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건강한 정신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법은 인간들이 오랜 기간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생긴 사회 질서를 지키는 것 외에는 다른 구체적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법치(rule of law)가 요구하는 법은 구체적 목적이나 동기를 추구하지 않는 행동 규칙이다. 따라서 어떤 법이 미래에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리 알 수 없어야 한다. 또한 법은 일반적 행동 규칙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법치는 이같이 법이 가져야 할 속성을 강조하는 것이지, 특정 개인이나 집단, 정당의 이익을 위해 국회가 만든 법을 무조건 지키라는 준법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을 무기로 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이며 폭정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 국회가 논의 중인,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중 모든 형사 재판을 중지토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재판중지법)이 그런 것이다. 재판 중지 여부는 헌법 제84조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맞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여러 차례 거부된 법 개정안도 그렇다. 주식회사의 탄생과 운행 원리를 부정하고 자유 사회의 근간인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상법개정안, 노동조합의 파업 비용을 낮춰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 사람들의 소득과 여가 간의 선택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조정되는 근로시간을 주 4.5일로 강제하는 법안, 쌀 농가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농업의 구조조정과 혁신을 방해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은 모두 구체적 목적을 가진 입법으로 법치의 법에 어긋남은 물론,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함으로써 그들 간의 협동과 화합을 방해한다.
이제 출범한 새 정권이 국민화합과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가는 길을 활짝 열기 위해서는 정권이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려는 욕망을 애써 억제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설계하고 계획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사회 질서에 의존해야 하는 거대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국방과 치안,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화(collective good)의 공급에 참여하고, 자기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별적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래야 이 대통령이 선언한 국민화합과 국민이 주인인 나라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