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적자 허덕, 법인세 못 내
법인지방소득세 징수액 67% 급감
산단 부진으로 도시 기능까지 위축
“기업, 설비 통합 등 산업구조 개선”
“정부도 고용위기지역 등 대응 필요”

철강·석유화학 산업의 침체가 지역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내 대표 석유화학산업 거점인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주춤하자 고용은 줄고 상권은 무너졌다. 세수까지 증발하면서 ‘도시 붕괴’의 연쇄 반응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단지의 부진이 도시의 기능 전체를 위축시키는 ‘산단 전이 효과’는 이미 여수에서 현실이 됐다.
11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여수국가산단의 평균 가동률은 81.5%로 집계됐다. 전 분기(86.1%)보다 4.6%포인트(p) 하락한 수치다. 불황에 따른 생산 축소는 곧장 수출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1분기 여수국가산단 수출은 70억 달러로, 전 분기(77억 달러)대비 약 9% 줄었다.
공장 가동이 줄자 가장 먼저 흔들린 건 고용시장이다. 여수산단은 정규직보다는 일용직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다. 최근 급격히 물량을 줄이자 하루 단위로 일감을 잃는 노동자가 속출하고 있다. 여수시와 전라남도는 이같은 충격이 지역 전반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고용노동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공식 요청한 상태다.
직접 타격을 입은 것은 산단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여수의 경제를 지탱해온 자영업 상권은 심각한 침체에 빠져 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산단 종사자들의 수요에 크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김종태 한국외식업중앙회 전남지회 여수지부장은 “예전엔 점심시간에 30~40명이 한꺼번에 몰렸지만 지금은 하루 매출이 10만 원도 안 되는 날이 많다”며 “현재 음식점 허가업소 약 5000곳 중 1000곳 가까이가 휴·폐업 상태로 추산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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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도 예외는 아니다. 여수시에 따르면 시의 법인지방소득세 징수액은 지난해 551억 원으로, 전년보다 67% 급감했다. 같은 기간 지방소득세도 49% 줄어든 1175억 원에 그쳤다. 산단 내 주요 기업들이 적자 늪에 빠지며 법인세 납부가 어려워진 탓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 한화솔루션, 남해화학 등 주요 5개 기업 모두 2023년 ‘결손’으로 법인세를 한 푼도 못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도시 기능 붕괴’는 비단 여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철강 중심지 포항은 제철소 감산 여파로 인구가 50만 명 선이 붕괴될 위기에 놓였고 ‘포항의 명동’으로 불리던 북구 중앙상가의 공실률은 28%에 달한다. 광양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제철소 납품업체들의 휴·폐업이 늘면서 구도심 공실률이 21%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기술혁신과 산업 구조 개선에 더해 고용위기지역 지정 등 정부의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수상공회의소는 최근 기업경기전망 보고서에서 “범용 제품 위주의 구조로는 경쟁력이 없다”며 “고부가가치 제품군 전환, 설비 통합, 정부 차원의 구조개편 지원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대표적으로는 여수·울산·대산 등에 소재한 범용 설비(NCC 설비)의 운영 주체의 통합으로 중복 투자, 관리 비용 절감 등 범용 제품의 채산성을 개선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어 “트럼프 2기 시대에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화석연료 재건 등 국제정세 변화 속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선점하기 위한 기업의 신속한 전략 마련과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이 적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