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흉악한 범죄나 음주사고 기사를 보면, “또 심신미약 주장하며 빠져나가겠지”라는 내용의 댓글을 보곤 한다. 사법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쌓인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 형사사건에서 심신상실, 심신미약이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80대 노모를 때려 살해하고 신체를 훼손한 60대 아들에게 법원은 지난달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아들은 우울증과 음주 등으로 사건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한복판에서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상태로 무면허 운전을 하다 8중 추돌사고를 낸 20대도 지난달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이 당시 약물로 인한 정신병적 장애로 심신미약이었다고 주장하나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설사 (심신미약에) 해당해도 감형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관련 뉴스
심신상실은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이 경우 처벌 자체가 면제된다. 반면 심신미약은 판단 능력이 다소 좀 부족한 상태로 감형은 되는데 처벌은 가능한 것이다.
심신미약은 재판에서 피고인이 범행 당시 어느 정도의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진다. 만 14세 미만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책임이 조각돼 어떤 범법 행위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심신상실은 정신과 전문의가 소속된 국립법무병원이나 국립 정신건강센터, 법원이 지정한 정신의료기관에서 감정을 받는다. 많은 이들이 감정을 신청하지만, 법원의 결정이 필요하다. 일상생활과 직장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인지기능의 손상 없이 ‘심신상실인 척’하거나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굳이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정으로 가더라도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법원의 감정유치 영장을 발부받아 2주에서 1개월간 정신·신체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각 검사 등을 받게 된다. 형을 감경받기 위해 이상하게 대답하는 등 심신 상태를 꾸미려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감정 상태에 따라 심신미약, 심신상실이 인정되더라도 처벌할 수 없거나 감경의 특혜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심신상실 판단을 받으면 국립법무병원에 치료 감호로 수감된다. 수감은 형벌이 아닌 보안처분이다.
심신미약 판결에 치료감호 조치가 병과되는 경우 치료감호를 먼저 집행하고, 치료감호 기간을 형기에 포함한다. 증상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형기보다 두 배 이상의 기간일 가능성이 크다.
촉법소년도 마찬가지다. 마치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듯한 느낌이지만, 처벌이라는 형 집행을 하지는 않더라도 만 10세 이상부터는 소년 보호처분에 의해 소년원에 송치될 수도 있다.
처벌이 아니기에 전과에 남지는 않지만,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 10세 이하라도 법정대리인인 부모와 함께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받는 것 역시 책임의 영역이다.
이보라 변호사는 “결국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 촉법소년 개념은 엄격한 요건과 절차 속에서만 인정된다”며 “그조차도 형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적절한 법적 대응과 처분을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