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과 태양광의 합리적 투자추진
요소수 등 연료소재산업 복원해야

새 정부가 출범한다. 국내외의 상황이 3년 전보다 훨씬 더 엄혹하다.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적어준 이웃 할머니의 해괴한 ‘정성’(미신)이 이제는 외국 관광객까지 몰려드는 ‘K-무속’으로 급성장했다. 극단적인 미국우선주의가 국제사회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다. 반(反)지성주의를 거부하고, ‘세계 시민’과 함께 도약·성장·연대를 추구하자던 윤석열 정부의 화려한 취임 일성이 오히려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다.
새 정부는 성대한 취임식이나 떠들썩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운영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8년 전에도 경험했던 일이다. 사실 국회 의사당에서의 조촐한 취임식이 더 정갈하고 깔끔했다는 평가도 있다. 인수위의 조직·운영이 언제나 매끄럽고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대선 공약의 부실도 생각처럼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교육·연구는 제쳐두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엉터리 폴리페서들이 졸속으로 만들어낸 녹색성장·창조경제·소득주도성장·과학적 국정운영과 같은 설익은 ‘국정철학’이 사라진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겉으로만 화려한 공약 속에 감춰놓은 이기적인 꼼수에 대한 걱정도 줄었다.
무지한 포퓰리즘과 지나친 거품을 걷어내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낙하산 기관장의 단골 메뉴인 요란한 조직 개편이 대표적인 거품이고 허세다. 실제로 조직 개편의 성공 사례는 흔치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 부서로 승격한 과학기술부는 3년 만에 해체 위기에 내몰렸다. 어렵사리 교육과학기술부로 살아남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거치면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통상업무는 외교부와 산업부 사이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보건부·에너지부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새 정부가 서둘러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인공지능(AI)에 대한 정치권의 지나친 관심도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인공지능부’와 ‘인공지능·데이터센터학과’가 능사일 수 없다. 정부가 그래픽처리장치(GPU) 10만 장을 구매해서 ‘데이터센터’를 짓는다고 ‘인공지능 3대 강국’ 진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중국의 ‘딥시크’는 약관 40세의 량원펑이 1년8개월 만에 만들어낸 걸작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국가’가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는 인공지능 정책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떼도둑(카르텔)’으로 내몰린 과학자와 ‘악당’으로 전락한 의사의 명예 회복도 서둘러야 한다. 국민의 정부에서 ‘촌지·폭력·비리 교사’로 시작된 교사 악마화가 오늘날의 교권 추락과 공교육 부실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권위적 관료주의에 찌들어버린 과학자와 의사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특히 학생이 떠나버린 의대와 전공의가 떠나간 수련병원의 정상화는 새 정부가 단 하루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더 이상의 혼란은 공멸(共滅)일 수밖에 없다.
탈원전과 태양광·풍력의 망령도 확실하게 벗어던져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원전을 안전하게 활용하는 지혜·용기와 미래 기술인 태양광·풍력에 대한 합리적 투자가 필요하다. 기업이 본업은 제쳐두고 발전소 건설·운영에 한눈을 팔 여유가 없다. 에너지 정책과 복지정책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일도 중요하다.
무너진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알량한 ‘세계 최초’를 핑계로 교사·학생·에듀테크 기업을 모두 패자로 만들어버린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DT)는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엉망진창이 돼버린 국가교육위원회·대학규제제로화·늘봄학교도 손질해야 한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묘한 발언으로 침몰하기 시작한 정유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퇴출 위기에 내몰린 석유화학산업을 되살려야 한다. 연료와 소재를 포기하면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어설픈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로 2011년 요소 생산을 퇴출했던 아픈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비료와 요소수 공급은 중국에 철저하게 예속된 상황이다.
인사가 만사이고, 어쭙잖은 ‘인맥’은 치명적인 독약이다. 어설픈 ‘국정철학’도 확실하게 경계한다. 물론 밀실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어두운 국정농단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하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입법·사법 농단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