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걷지 못하는 아이를 교대로 업어서 외출시켜줬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다른 동료 부모들처럼 격려하고 도와준 이웃들 덕분에 한국에서 ‘다름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고 동료 시민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민 생각을 접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에 비해 물리적 환경은 아주 조금 나아졌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숫자는 늘었고, 저상버스 비율도 느리지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조차도 간단한 결과는 아닙니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저항한 결과입니다. 아이가 1층에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깥을 보면 아직도 동네 상점과 약국은 10곳 중 고작 1~2곳 정도밖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휠체어를 탄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동약자 비중이 전 인구의 30%가 넘고 초고령화 영향으로 전체 인구 감소 가운데에서도 계속 증가 중인데, 점점 늘어나는 이들 국민과 이들에 대한 ‘우선 돌봄’의 부담이 지워지는 가족까지 접근권과 이동권의 제약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줍니다. 주변에 부모님 거동이 불편해졌는데 휠체어째 들어가는 택시가 없어서 휴가를 내고 업고 내려와 병원에 모시고 가는 자녀들의 이야기, 자녀가 장애를 갖게 된 후 일을 그만두는 부모의 이야기는 너무 흔합니다. 접근권과 이동권을 넓히는 건 돌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국가에 대한 미래 투자입니다. 똑같이 고령화로 가고 있는 외국 이동약자들이 한국에 관광 왔을 때 접근·이동권 인프라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건 덤입니다.
세계적으로 장애 인구는 15%에 달하는 걸로 추정됩니다. 가족 1명이 같이 온다면 30%에 달하는 전 세계 인구 관광 수요에 대한 투자라고 봐도 됩니다.
비단 ‘동네 음식점에 들어갈 권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삶의 근간이 되는 주거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사회 공통의 책무가 될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 특히 초고령 사회에 이동이 부자유한 어르신들이 승강기 고장 등의 비상 상황에서 이동하고 거주할 수 있는 대책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이동약자를 1층에만 살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얼마 전 휠체어를 탄 지인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작업 때문에 11층 집에서 한 달 동안 갇혀 생활해야 했습니다. 승강기 교체처럼 예측 가능한 이동 불가 상황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 지원 등을 일부 받아 공동체가 함께 임시 대안거주시설 등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재난 상황도 있습니다. 5월 말 서울지하철 방화로 시민들이 터널을 통과해 대피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우리 딸이 저기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공시설에서 이동약자 재난 대피에 대한 체계적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국민 대다수에게 가족 구성원 중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약자가 재해 상황에서 가장 뒤처지지 않게 하려면 재난대응체계에 약자 대피를 먼저 고려할 수 있도록 평소에 자원을 투여해야 합니다.
이렇게 약자들을 고려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의지가 정책으로 구현된다면 약자가 가족 구성원에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딸을 대학과 사회에 내보내야 하는 저도 좀 더 사회와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