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가 ‘R(경기침체)의 공포’에 빠져들었다. 한국은행은 29일 1분기 역성장 충격과 미국 관세 인상 타격을 반영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0.8%로 내렸다. 민간 기관에 이어 한은 전망마저 3개월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은 충격적이다. 한은은 ‘발등의 불’이 된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연 2.50%로 낮췄다.
우리 경제가 연 1% 미만 성장에 그친 건 87년 헌정 체제 이후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4.9%),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 팬데믹(-0.7%) 등 세 번뿐이다. 한은은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과 올 2월 각각 0.2%, 0.4%포인트 낮췄으나, 이번엔 더 크게 조정했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도 기존 1.8%에서 1.6%로 0.2%포인트 낮췄다.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1% 안팎에 머무는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53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 일각에선 성장률 하락 우려로 인해 한은이 연내 1~3차례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전망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예상보다 성장세가 크게 약화됐기 때문에 향후 금리 인하 폭이 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물론 다른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는 없다. 새 정부 출범 후 추진될 2차 추가경정예산 등의 영향으로 성장률이 개선되면 금리 인하 압박이 줄어들 수 있다고 일각에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한은은 앞서 지난해 10월 3년2개월 만에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선 뒤, 총 네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현재로선 2.00%포인트까지 벌어진 미국(4.25∼4.50%)과의 금리 격차가 목에 걸린 가시와 같다. 환율 상승, 외국인 자금 유출 등의 부작용 우려가 없지 않다. 이날 당장 환율이 출렁거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달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상당 기간 4.50%로 묶을 조짐이다. 일본의 4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8일 18년 만에 최고인 연 3.135%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금리 인하 코스로 내달리면 소탐대실 참사가 빚어질 수 있다. 우리 경제를 괴롭히는 암적 요인 중 하나가 환율 변동성이다.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기준금리의 ‘비둘기’ 처방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걱정거리도 낳는다. 가계부채와 집값 불안이다. 역대 최대인 1928조 원의 가계부채 악재 속에 서울 집값 상승세가 번지는 추세다. 집값 상승이 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집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다. 완화적 통화정책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수 있다. 정교한 정책조합으로 돈의 생산적 흐름을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다. 부동산 투기 바람만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활성화다. 그렇다고 국가와 민생을 빚더미의 늪에 빠뜨리는 최악의 선택을 해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번 기준금리 인하도 자충수로 전락하고 만다. 국가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과감한 규제 혁파와 친기업·친시장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신성장 엔진이 점화되고, 제대로 돈이 돌게 된다. 이제 ‘경제의 시간’이다. 특히 차기 정책 설계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