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이 척척 맞는 퍼포먼스, 음원과 달라서 더 기다려지는 라이브, 매번 색다른 착장까지…
내 '돌'(아이돌)의 무대 위 모습은 항상 기다려집니다. 그러나 요즘 팬들이 무대만큼 손 모아 원하는 특별한 콘텐츠가 있는데요. 이른바 '자컨', 자체 제작 콘텐츠입니다.
K팝 팬들 사이에서는 표준어(?)처럼 통용되는 용어인데요. 머글(팬이 아닌 대중)을 위해 설명하자면 자컨은 가요 기획사 소속 아이돌의 일상이나 활동 비하인드, 혹은 사내 콘텐츠 제작팀과의 협업으로 탄생하는 일종의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강렬하고 멋진, 전문적인 모습을 자랑한다면 자컨에서는 색다른 매력을 가감 없이 공개하면서 팬들의 눈길을 붙드는데요. 무대에서 미처 보여줄 수 없는 '예능감'까지 뽐내면서 배꼽을 잡게 하는 그룹도 있죠.
28일 공개된 그룹 세븐틴의 자컨 '고잉 세븐틴(GOING SEVENTEEN)'의 컴백 스페셜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이번 에피소드에서 멤버들은 데뷔 초 출연한 예능을 직접 재현해 웃음을 자아냈는데요. 직후 게재된 '링 세리머니(RINGS CEREMONY)' 영상에는 "앞으로도 빛나는 세븐틴으로 영원에 도전하겠다"는 멤버들의 바람이 담겨 뭉클함까지 안겼죠.
또 트레저는 29일 새 자컨 '보물기획' 론칭을 예고했습니다.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엔터)의 극비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미국 출장을 떠난 멤버들, 하지만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으로 인한 치열한 분투가 그려질 예정인데요. YG엔터 측은 "트레저가 기발한 상황극을 통해 더욱 업그레이드된 예능감으로 돌아온다"며 "색다른 재미와 멤버들 특유의 케미스트리를 모두 만나볼 수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고 전했죠. 7월 공개됩니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자컨은 일찍이 유행을 넘어 아이돌과 팬의 거리감을 좁히는 창구이자 K팝이 콘텐츠 중심 산업으로 진화했다는 증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데요. 자컨의 매력, 아직도 모른다고요?

통상 아이돌 그룹의 공식 활동기에는 음악 방송, 팬 사인회, 예능 프로그램과 라디오 출연, 인터뷰 등으로 바쁜 스케줄이 이어집니다.
자컨은 아이돌의 활동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콘텐츠인데요. 정식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뿐 아니라 녹음 현장, 첫 방송 리허설, 멤버들끼리의 연습 장면 등 무대 밖의 준비 과정이나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순간을 보여주죠. 무대 위 모습과 또 다른, 일상에 가까운 모습이 드러나는 만큼 팬들에게는 더없이 특별합니다.
다만 자컨의 진가는 비활동기 때 드러납니다. 공식 활동으로 인한 볼거리가 없을 때 팬덤을 유지하고 또 새롭게 유입하는 '떡밥'과도 같은데요. 활동이 없다는 이유로 팬심이 식지 않도록, 꾸준히 콘텐츠를 공급하며 '아이돌이 지금도 나와 함께 있다'는 체험을 가능케 합니다.
초창기 자컨은 데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나 간단한 비하인드 영상 수준에 머무르곤 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가수 보아의 일본 데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보아 점핑 인투 더 월드(BoA JUMPING INTO THE WORLD)'를 공개한 바 있죠.
소속사의 기록용 영상이 자연스럽게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브라운관 밖 콘텐츠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기록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획과 연출이 더해진 '작품'으로 진화하게 됐는데요. YG엔터는 Mnet과 함께 '리얼다큐 빅뱅'을 론칭, 데뷔를 위해 힘 쏟던 연습생 시절의 빅뱅 멤버들을 공개했습니다. 여기서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대사(?), "지용아, 6년 연습하고 집에 갈래?"(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나왔죠. '빅뱅 TV', '2NE1 TV'로는 해외 숙소 생활과 녹음실 비하인드, 멤버들 간 케미스트리를 고스란히 공개하면서 신선한 재미를 줬습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자컨의 무대도 순식간에 넓어졌습니다. 유튜브, 지금은 서비스를 종료한 V앱 등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가요 기획사는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기획·연출·편집하는 웹 예능 형태의 자컨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2015년부터 선보인 '달려라 방탄'이 대표적이죠.
이제는 예능 못지않은 콘셉트와 서사까지 갖춘 자컨도 많아졌습니다. 센스 넘치는 트렌디한 자막, 스토리텔링이 살아 있는 구성,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텐션을 끌어내는 연출이 특징인데요. 자컨이 연예계 핵심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비결입니다.

팬덤과 대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어렵디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븐틴의 자컨 '고잉 세븐틴' 사례를 보면 불가능의 영역은 또 아니죠.
2017년 첫선을 보인 '고잉 세븐틴'은 초창기만 하더라도 비하인드 콘텐츠 수준이었습니다. 앨범이나 음악방송 등 준비 과정, 해외 투어 중 짤막한 일상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제는 K팝 자컨의 '교과서'로도 불리는데요. 단순 비하인드에서 벗어나 게임, 추리 토론, 공포 특집, 콩트 등 다양한 예능 포맷을 도입하면서 인기를 끌었죠. 고등학생으로 변신한 '순응 특집', MT를 떠난 'TTT', 무논리 토론쇼 '논리나잇'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주목받았습니다.
이들 에피소드는 팬이 아닌 머글 사이에서도 재밌기로 소문이 났는데요. '논리나잇'에서는 '눈 3개로 살기' vs '손 3개로 살기', '쥐랑 1년 살기' vs '쥐로 1년 살기' 이런 식의 주제를 갖고 토론을 벌입니다. 허무맹랑한 주제를 갖고 진지하게, 또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세븐틴 멤버들을 보다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죠.
아이디어가 빛나는 기획, 연출과 함께 13명 멤버들의 독보적인 캐릭터, 팬들이 "하지만 너희들은 가수잖아…"라고 혼란스러워 할 정도로 뛰어난 예능감, 편한 분위기 속 나올 수 있는 케미스트리도 두드러집니다. 다인원 그룹만이 선보일 수 있는 시너지는 매회차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죠.
그렇다 보니 '고잉 세븐틴'은 세븐틴의 입덕 계기로도 통합니다. 세븐틴의 노래를 잘 알지 못해도 즐길 수 있는 예능적 요소와 기획력을 강화하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웹 예능으로 성장한 겁니다.
'고잉 세븐틴'은 모든 회차가 수십만~수백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큰 사랑을 받은 특집은 2020년 8월 공개된 납량 특집 '술래잡기'인데요. 29일 기준 2137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죠.

과거 음악 방송 출연과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출연 등이 홍보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자컨 등 직접 만든 콘텐츠를 유통하는 방식도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획사들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예능 못지않은 퀄리티의 자체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팬과의 접점은 훨씬 넓어졌죠. '고잉 세븐틴'뿐 아니라 몬스타엑스의 '몬 먹어도 고', 더보이즈의 '더비대학교', 크래비티의 '비티파크', 에이티즈의 '원티즈(WANTEEZ)', 엔믹스의 '믹스 로그(MIXX Log)', 르세라핌의 '르니버스(LENIVERSE)' 등을 통해 공식 활동 외 편안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팀 고유의 감각과 멤버 개인의 개성을 공고히 구축하곤 합니다.
이때 광고 수익은 물론 브랜드 협업, 굿즈 제작, 행사 마케팅 등 다양한 수익 모델로까지 연계할 수 있는데요. 글로벌 팬 유입에도 자컨은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온라인 콘텐츠이기에 진입 장벽이 낮고, 비정형적인 포맷과 자막 번역 서비스 덕분에 해외 팬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죠.
이제 자컨은 단순한 부가물이 아니라,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과 생존력을 함께 보여주는 핵심 콘텐츠이자 전략이 됐습니다. 무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서사, 캐릭터, 그룹의 세계관이 자컨 안에서 쌓이는 셈이랄까요? 다음 '밥 친구'가 될 자컨은 어느 그룹에서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