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컷]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쟁의 은밀한 공모자일까?

입력 2025-05-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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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키노라이츠)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키노라이츠)

애니메이션(animation)은 ‘생명을 불어넣다’라는 뜻의 라틴어 ‘animatio’에서 비롯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어원에 충실한 영화감독이다. 그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비체(卑體)들이 등장한다. 공포와 혐오의 대상인 동시에 매력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비인간적 타자들(괴물, 신, 동물, 심지어 사물까지도)이 생명을 부여받아 이야기의 전면에 나온다.

생명이 없을 것만 같은 것들에 생기를 부여하는 그의 상상력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핵심 요소다.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이 같은 그의 영화적 태도와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미야자키가 비행기에 유독 집착하게 된 배경을 그의 유년 시절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입됐던 미쓰비시 제로기의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전투기의 잔혹하고 끔찍한 폭력성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매료된다. 미야자키로 상징되는 스튜디오 지브리 역시 1930년대 군용기 ‘카프로니 309 지브리’에서 따온 것이니, 그가 비행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전투기에 대한 그의 낭만적 태도는 반전주의 역시 근본적으로는 전쟁에서 출발한다는 역설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면서 평화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모순적인 전쟁영화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매혹적인 비행 장면은 전투기 기술의 숭배를 넘어 전쟁의 로망까지 은밀하게 자극한다는 점에서 폭력에 간접적으로 공모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키노라이츠)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키노라이츠)

물론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미야자키는 네 살 때 도치기현 중부 우쓰노미야시에 있는 집이 야간에 폭격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미국은 일본에 두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그의 가족과 이웃이 발을 붙이고 있던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되었다. 폭격으로 인한 상처는 역설적으로 그가 폭탄 등 군수 물자를 태운 전투기가 아닌 아이들과 함께 희망의 세계로 날아오르고자 하는 비행의 환상성을 그리고 싶었던 실마리를 제공한다.

하쿠의 등을 타고 밤하늘을 날아오르는 치히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새와 함께 투명한 구름을 가로지르는 키키(‘마녀 배달부 키키’), 토토로의 품에서 마을 주위를 평화롭게 비행하는 자매들(‘이웃집 토토로’), 곤경에 처한 소피를 안고 순간적으로 하늘 위를 떠오르는 하울(‘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습까지. 그의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은 대부분 광활한 하늘을 사뿐하게 날아다닌다. 거기에는 중력의 구속을 벗어난 존재의 아름다움이 있고, 성장과 구원, 자기 초월의 동화적 상상력이 있다.

“모순은 사물의 움직임을 이끌고, 변화와 발전의 근거가 된다”라는 헤겔의 논의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부정하면서 새롭게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모순은 정반합의 원리처럼 단순한 충돌이 아닌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하는 생산적인 긴장 상태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은 바로 이 모순 위에 놓여 있다.

그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화염의 악마 캘시퍼는 "나도 화약의 불은 싫다"고 말한다. 이 자기부정과 모순의 역동성이야말로 미야자키가 발산하는 상상력의 원천이자 그가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던 수많은 비체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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