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분은 5년 전 위암 진단을 받았다. 예후가 좋지 않다는 말에 낙담하며 눈물까지 글썽이던 환자를 다독이며 힘내란 말을 전했지만 축 처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다행히 대학병원에서의 수술 결과는 좋았지만, 항암치료를 이어가던 중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심한 폐렴이 약한 면역을 뚫고 침범한 것이다.
치료는 난관이었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고 호흡도 좋지 않아 산소 치료까지 받게 되자 불안이 커졌고, 결국 긴 병마에 지친 환자는 포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세요. 항생제를 바꾸고 집중 치료를 시작할게요. 그리고 지금은 암의 완치나 먼 미래를 보는 대신 바로 앞만 보세요. 그냥 오늘 하루를 버티겠다는 마음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환자, 하지만 우린 포기하지 않고 험난하고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추위에 떨고, 눈보라에 쓰러졌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 하루하루 한 걸음 두 걸음씩 느리지만 앞을 보며 걸었다.
어느덧 긴 겨울의 끝을 알리듯 푸른 빛이 대지에 깃든 2월의 어느 날, 드디어 긴 고통의 시간은 막을 내렸다. 결국 폐렴은 완치되었고, 그후에도 힘든 암과의 사투를 이어간 그분은 오늘과 같은 완치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 처음 암이 진행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눈앞이 캄캄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과연 내가 험난한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어요. 게다가 합병증까지 생기자, 완치라는 먼 길을 갈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 하루만 버티자는 내 말에 마음을 고쳐먹었단다. 먼 앞날을 바라보니 암흑 같던 시간이 오늘 하루만 이겨내자고 생각하니 편해졌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가 한 달이 되고, 또 일 년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말과 함께 그는 웃으며 진료실을 나갔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환자분께 행운만 깃들기를.” 기도하는 동안 며칠간 소나기를 몰고 왔던 먹구름은 걷히고 밝은 봄 햇살이 어둡던 진료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