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여름, 오세훈 서울시장이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동행식당’ 지정 음식점에서 밥 한 숟갈을 뜨려던 찰나였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쪽방촌 주민이 인사를 건넸다. “시장님 덕분에 잘 먹고 잘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때는 제가 안 찍었습니다. 한번 찍어보도록 노력할게요. 제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동안 꿈쩍 않던 표심이 움직였다고, 깜짝 ‘고백’을 한 것이다.
동행식당은 쪽방촌 주민들에게 밥 한 끼 지원하는 사업이지만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울 시내 5개 쪽방촌에 지정된 식당(총 51곳) 중 원하는 곳에서 먹고 싶은 음식(9000원)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무료급식소 앞에 줄 설 필요가 없으니 ‘낙인감’이 사라졌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행위를 통해 ‘자존감’은 올랐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1평 남짓 공간에서 삼시세끼를 술로 때우던 쪽방촌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식당에 가려고 안 하던 세수를 했고, 옷매무새도 다듬었다. 고립된 삶에 익숙했던 이들이 사람을 만나 소통하면서 “살고 싶어졌다”고도 했다. 실제 쪽방주민 실태조사 결과 우울감은 2021년 44.1%에서 2024년 39.9%로, 자살 생각은 24.8%에서 19.3%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약자동행은 기존 복지 정책에 ‘상상력’을 더했다. 실내에서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싶다는 주거 취약계층의 바람을 실현하면서도 급식소에 줄 세우지 않는 방법을 고민했다. 지원금 몇 푼 쥐여주는 ‘빈곤한 철학’에서도 나아갔다. 그 결과 존중, 공동체, 유대감이란 가치를 살렸고, 지역경제도 도왔다.
저소득층에 현금을 차등 지원하는 ‘디딤돌소득’도 자립 의지를 갖도록 설계됐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사람을 수급의 굴레에 가뒀다. 노동으로 수입이 늘면 자격을 잃는 탓에 수급으로 연명하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디딤돌소득은 어려울수록 더 지원하면서도 근로의욕을 꺾지 않았다. 2년 차 분석 결과 근로소득 가구(31.1%)와 탈수급 비율(8.6%)이 모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민기초생활수급제도의 탈수급 비율은 0.22%였다. 사각지대 해소로 일시적 빈곤에 처한 이들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선물한 것이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교육 기회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서울런’은 개천의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에 사다리를 놔줬다. “모두 용이 될 필요 없다”고 ‘정신승리’하는 대신, 꿈을 이룰 방법을 찾아준 것이다. 공부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못했던 학생들은 잠재력을 뽐냈다. 올해 수능에서 서울대 19명 등 782명이 대학에 합격했다.
서열화 조장 논란도 있었지만 ‘가난한 집’ 애들이 우수한 성적을 받은 건 감출 일이 아니다. 대학졸업장 하나로 인생이 결판나는 구조는 문제지만, 집안 형편이 족쇄가 되는 현실은 더 문제다. 서열화 프레임에 매달려 이념 전쟁을 벌이는 사이 달라진 건 서울대 진학 학생 중 강남3구 출신이 늘고 있다는 현실뿐이다.
좋은 약자 정책은 존엄을 느끼도록 배려하고 자립을 도우며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삶에서 희망을 맛보고, 그게 감동이 돼 표를 주고 싶게 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