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나를 일깨우는 '요리의 힘'

입력 2025-05-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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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이상 묵혀뒀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자 시작했던 블로그는 내 학보사 시절에 썼던 기사들과 대학 시절에 만들었던 영상들로 가득했다. 마지막 블로그 글은 그냥 취미활동을 위해 끄적인 내용뿐이었다.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방치해 두었던 블로그를 다시 깨운 이유는 간단했다. 한 편의 드라마 때문이었다. 그것도 종영한 지 2년이 넘은 드라마였다.

한석규, 김서형 주연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드라마는 내게 블로그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줬으며, 최근 한 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게 했다. 바로 이 드라마의 원작 에세이이자 동명의 책이다.

이 책과 드라마의 내용은 간단하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이 전부인 강창욱(한석규 분)은 별거 중인 아내 정다정(김서형 분)이 대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정은 시한부 인생이 되자 별거 중인 남편에게 자신의 병간호를 부탁한다. 창욱은 점점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돼 가는 아내 다정을 위해 좋은 식재료와 건강한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쏟으며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창욱은 상당히 유명한 번역 작가이자 강사로 나오는데, 그는 아내를 위해 만든 요리 레시피와 과정, 소회를 기록하는 블로그를 개설한다. 그 블로그를 통해 다정도 창욱의 진심을 알아가게 되고 세상을 떠나기 전 그동안 두 사람의 갈등을 봉합하는 계기가 된다.

사실 이 책과 드라마에서 핵심은 블로그가 아니라 요리에 있다.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음식을 남을 위해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 미국에 있는 처제가 아픈 다정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자 창욱은 아귀찜을 직접 만들어 대접한다. 창욱은 "아마도 요리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 아니었다 싶다.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먹을 거리를 만든 건. 사실 아귀찜은 실패에 가까웠다. 우선 오동통한 콩나물이 아니었고 너무 오래 쪘다. 아삭하게 씹는 맛이 사라지고 질겼다. 어쨌거나 다들 맛있다며 먹어주었고, 그래서 결국엔 맛있는 아귀찜이 됐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조카를 위해 졸지에 신메뉴까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기쁨. 진즉에 왜 몰랐을까. 이런 종류의 즐거움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반복과 훈련을 통해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변했다. 요리 실력도, 나도⋯"라고 말한다.

참 공감이 가는 대사였다. 사실 나도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남들이 요리하는 게 귀찮지 않냐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만든 요리를 맛본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맛있다"는 반응이 오길 기대하고, 점점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각종 블로그나 유튜브, 요리책까지 찾아본 것 같다. 이처럼 나를 요리에 빠지게 한 것도 다름 아닌 내 요리를 맛보고 기뻐했던 동생의 친구들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동생이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고, 나는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만든 떡볶이를 먹은 동생의 친구들은 "너무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고, 그 뿌듯함을 잊지 못하고 종종 집을 올 때마다 떡볶이를 만들어 주었다.

요리를 주제로 한 방송이나 콘텐츠가 늘 화제다.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서진이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냉장고를 부탁해', '콩콩밥밥', '길바닥 밥장사'를 비롯해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식객', '고독한 미식가', '심야식당' 등 단순히 요리 자체만 조명하는 게 아니라 요리에 담긴 스토리와 이를 통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교감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안긴다. 한 그릇의 요리에 담긴 그 마음, 단순히 식사한다는 것은 요리의 맛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요리를 만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상을 보면서 나도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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