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후 올해까지 곳곳서 전파 신호 크게 늘어
포·차량·드론·폭발물 등 분야 다양
위성사진·휴대폰 위치 데이터·운동 앱 등서도 확인돼

이와 관련해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데이터 분석 업체에 의뢰해 러시아 군수 공장들의 가동 현황을 집계했다. 데이터는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휴대폰 등 전자기기 신호를 추적해 공장 노동자 수를 가늠하는 방식으로 추산됐다.

다른 시설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차량의 경우 세계 최대 전차 제조사 우랄바곤자보드가 운영하는 전차 공장에서 2023년보다 2024년 훨씬 많은 전파 신호가 감지됐다. 신호는 올해 들어서도 크게 늘었다. 장갑차를 생산하는 아르자마스 공장과 보병 전투 차량을 만드는 쿠르간마쉬자보드 공장, 모토빌리하 공장에서도 현재까지 신호가 꾸준히 늘고 있다.
포의 경우 곡사포와 전차용 포신을 생산하는 예카테린부르크 제9공장에서 야포와 대포가 노천에 주차된 것이 위성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여기서 불과 몇 km 떨어진 NPO노바토르에선 강력한 전자기기 신호가 잡히고 있다. 이곳은 이스칸데르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곳이다. 이스칸데르 발사 시스템을 만드는 볼고그라드 타이탄-바리카디와 NPO 스플라프에서도 신호가 대량으로 잡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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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제조 시설도 바쁘다. 알라부가 드론 공장, 베기셰보 공항, 카잔 헬리콥터 공장, 칼라시니코프 자회사 잘라 에어로 공장(드론)이 대표적으로 바쁘게 가동 중인 곳들이다.
특히 무인 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하면서 이와 관련한 생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알라부가 드론 공장의 경우 지난해 3월 건설 중이던 건물이 9월 완공되고 근처에 새로운 공장이 건설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과열된 방위 산업을 보여주는 징후는 전자파 신호와 위성사진만이 아니다. 폭발물에 사용되는 발연황산 공장과 군사 연구센터가 밀집한 비스크에선 2023년 기숙사 구역과 화학 공장 구역 사이 하루 평균 교통량이 19% 증가했다. 2교대와 3교대 근무와 관련된 노동자들이 한곳에 머무르는 체류 시간도 32% 늘었다. 운동 기록을 제공하는 앱 스트라바에 따르면 이들 공장 인근에서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늘었는데, 이는 새로운 인력이 유입됐다는 신호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주택 임대료가 연간 21%씩 증가한 것도 그만큼 거주 수요가 늘었다는 의미다.
나토와의 국경 지대에서 군사력을 확장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계획과 관련된 도시 루가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볼 수 있다. 휴대폰 위치 데이터에 따르면 루가 산업 지대 주변 인구 밀도가 증가하고 오후 10시에서 오전 6시 사이 체류 시간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야간 근무와 기숙사·군 시설 사이 새로운 통근 루트가 생겼다는 것을 시사한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로 인해 그간 군수품을 조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지난해부터는 포탄 상당 부분을 북한에 의존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고 핵심 자재 역시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는 제재에 적응하고 있고 일부 중요한 부품은 이제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러시아 경제 전문가인 줄리안 쿠퍼 버밍엄대 명예교수는 최근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사이트 기고에서 “이론상 이러한 방위 동원 노력이 꽤 오랜 기간 유지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며 “러시아가 어떻게 (제재를) 적응했는지에 대해 서방이 이제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