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직을 둘러싼 선택의 기로⋯영화가 비춘 권력의 내막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Conclave : 교황을 뽑는 전 세계 추기경들의 모임)가 8일(현지시간) 둘째 날 일정에 접어들었다. 교황 선출은 신성한 종교적 의식이기도 하지만 권력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즉 콘클라베는 '신의 선택'과 '인간의 정치'가 부딪히는 드라마적인 속성을 내포한다.
2005년 베네딕토 16세,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생했던 콘클라베 때 모두 둘째 날 흰 연기를 볼 수 있었던 만큼 이날 새로운 교황 선출이 유력하다. 전 세계가 새로운 교황의 등장을 기다리는 가운데, 바티칸을 무대로 펼쳐지는 세 편의 교황 소재 영화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첫 번째는 난니 모레티 감독이 연출을 맡은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다. 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된 이 영화는 콘클라베에 참석한 대부분의 추기경이 "제발 뽑히지 않게 해주소서", "저는 안 됩니다", "주여, 저는 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추기경이라면 으레 교황의 지위에 오르고 싶어 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는 것이다.
교황직을 영광이 아닌 부담으로 여기는 이 장면은 종교적 권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해체한다. 동시에 권위가 요구하는 무거운 책임에 억눌린 인간 내면의 풍경을 유머와 아이러니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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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를 통해 새 교황으로 선출된 멜빌(미셸 피콜리 분)은 부담감에 짓눌려 성도들에 대한 연설을 거부하고, 바티칸을 도망친다. 평소 연극배우가 꿈이었던 멜빌은 우연히 극단 관계자들과 어울리게 되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에 오른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하지 않을 권리'와 '자기답게 사는 법'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교황의 자리가 누군가에겐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될 수 있음을 유머를 섞어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제64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기도 하다.

다음은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 '두 교황'(2019)이다. 베네딕토(앤서니 홉킨스 분)와 프란치스코(조너선 프라이스 분)는 음악 취향부터 식사 방식 등 어느 하나 맞는 게 없다. 교황청 엘리트로 성장한 베네딕토는 교회의 전통과 권위를 중시한다. 반면에 현장 중심의 사목(司牧)을 중시하는 프란치스코는 동성애 등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며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를 강조한다.
이 영화는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둘러싸고 견해가 다른 두 인물이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담았다. 의견이 엇갈려도 경청과 존중을 잃지 않는 두 교황의 대화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종교뿐만 아니라 극단으로 치닫는 현대 정치 상황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마지막은 최근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콘클라베'(2025)다.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교황 선출 전후의 과정을 정치 스릴러로 풀어냈다. 성스러움과 경건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콘클라베를 통해 그 안에 숨겨진 추기경들의 욕망과 권력 투쟁의 민낯을 드러낸다.
앞서 소개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가 교황직을 회피하려는 추기경들을 그렸다면, 반대로 이 영화는 교황이 되고 싶어 하는 추기경들 간의 치열한 권모술수를 그렸다. 유력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한 네거티브 공세, 은밀한 연대와 배신 등 교황 선출이라는 신성한 의식이 실제 정치판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