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 외계 생명체 통해 퀴어ㆍ젠더ㆍ장애 등 그려

'보행 연습'을 쓴 소설가 돌기민이 한국인 최초로 아더와이즈상(Otherwise Award)을 받았다. 이 상은 젠더의 개념을 탐구하고 확장하는 데 이바지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7일 출판계에 따르면 아더와이즈상 심사위원단은 "SF와 판타지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인종, 계급, 국적, 장애의 맥락에서 젠더에 대한 광범위하고 교차적이며 포용적인 이해를 지닌 작품을 발굴했다"라며 수상 이유를 전했다.
2022년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보행 연습'은 지구에 불시착한 식인 외계인 '무무'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무무는 인간의 몸으로 위장해 데이팅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성관계 후 상대를 잡아먹으며 생존한다.
지구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무무의 삶은 실로 고단하다. 두 발로 걷는 일조차 무무에게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무의 존재를 통해 젠더, 퀴어, 장애, 육식 등의 소재를 다루며 인간 규범과 정상성에 관한 의미를 교란하고 해체하는 문체를 선보인다.

이 책에 대해 김건형 문학평론가는 "무무의 가장 큰 목표는 인간 사회에 들키지 않고 섞여서,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먹으며 하루만큼 더 살아내는 것"이라며 "낯선 시선으로 무무가 남긴 일지 '보행 연습'은 인간 사회에서 어떤 몸을 유지하는 것이 생존 그 자체와 같음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돌기민은 본지에 "작품이 완벽해서 상을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더 훌륭한 작품을 쓰라는 독촉으로 여기고 분발하겠다"라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식인 외계 생명체라는 도발적인 설정을 통해 다층적인 주제를 포괄적으로 탐색한 이 소설은 국내 출간 전부터 주목을 받아 영미권에 판권이 먼저 수출됐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영국, 폴란드,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 여러 국가에 번역ㆍ출간됐다.
아더와이즈상은 1991년 SF 작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해마다 젠더에 대한 이해를 넓힌 SF 및 판타지 문학을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엘리노어 아너슨, 니컬라 그리피스, 어슐러 K. 르 귄 등 유명한 SF 작가들이 수상한 바 있다. 특히 2019년 부커상을 받은 마가렛 애트우드가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돌기민이 소속된 바바라 J. 지트워 출판 에이전시는 한강, 신경숙, 김영하 등 유명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영어 시장으로 수출하는 일을 담당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