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기존 삼성전자가 이끌던 메모리 시장의 판도가 뒤집혔다. 이에 삼성전자는 올해 범용 제품을 줄이고, 고부가 제품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해 재역전에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하반기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HBM4(6세대)에서 선제적으로 차세대 기술을 적용해 승부수를 띄울 전망이다.
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구형 D램으로 꼽히는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저전력(LP)DDR4 일부 품목 생산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3세대 HBM인 HBM2E 역시 생산량 감축에 돌입했다.
DDR4는 지난해 삼성전자 메모리 매출 가운데 30%를 차지한 제품이다. 다만 범용 제품인 만큼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가 심해지면서 수익성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CXMT는 DDR4 제품 중심으로 올해 웨이퍼 생산능력이 지난해(162만 장) 대비 68% 늘어난 273만 장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범용 제품 생산을 줄임과 동시에 DDR5, HBM 등 고부가 제품 생산 비중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기존의 D램 생산 라인을 고사양 제품 라인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고성능 HBM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여전히 견조하면서 수익성 측면에서도 빠른 공정 전환이 필수적이다. 메모리 시장 만년 2등이었던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을 조기에 선점한 덕분에 최근 삼성전자를 제쳤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영업이익 7조4405억 원을 기록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을 포함한 삼성전자 전사 실적(6조7000억 원)을 크게 웃돌았다.

삼성전자는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HBM4에서 재기를 노릴 방침이다. 특히 HBM4부터는 맞춤형(커스터마이징) 트랜드로 전환되는 만큼 초기에 고객을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HBM4에 대한 국제 표준도 확정되면서 반도체 업계 간 시장 경쟁이 더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반도체표준화기구(JEDEC)는 HBM4 규격을 2048개의 입출력 통로(I/O), 초당 최대 2테라바이트(TB) 대역폭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HBM4 높이를 720마이크로미터(μm·100만분의 1m)에서 775μm로 완화해 기업들이 차세대 패키징 공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지난달 세계 최초로 HBM4 12단 제품 샘플을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제공하는 등 선제 행보를 보이면서 삼성전자로서는 더욱 조급해진 상황이다. HBM은 일반 D램, 낸드와는 달리 통상 1년 전에 공급 물량이 결정되기 때문에 고객사와 협의를 빨리 마치는 게 중요하다.
이에 삼성전자는 HBM4에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적용해 경쟁사와 차별화할 방침이다.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은 ‘1x(1세대)→1y(2세대)→1z(3세대)→1a(4세대)→1b(5세대)→1c(6세대)’ 순으로 개발된다. 삼성전자는 HBM3E까지는 1a D램을 사용했다. HBM4에 1b를 건너뛰고, 1c를 적용하는 것은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SK하이닉스는 HBM4E(7세대)부터 1c D램을 적용한다.
삼성전자는 HBM4를 고객사 과제 일정에 맞춰 하반기 양산할 예정이다. 커스텀 HBM도 HBM4 및 HBM4E(7세대) 기반으로 복수의 고객과 협의 중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0일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HBM4 일부 과제는 일반(스탠다드) HBM4 더불어 2026년부터 매출에 기여할 것"이라며 "고객 수요 대응을 위한 필요 투자도 지속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