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에 연구용 원자로 설계 기술을 수출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1959년 미국으로부터 첫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를 도입한 지 66년 만에 첨단 기술을 역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 무엇인지 전 세계에 과시한 기념비적 성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미국 MPR 컨소시엄이 미국 미주리대가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한 ‘차세대연구로 사업’의 초기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 미주리대는 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기존 연구로가 노후화하자 2023년 4월 차세대 연구로 건설사업 실시 공고를 냈다. 원자력연 컨소시엄은 사전자격심사, 최종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을 거쳐 이번에 계약을 확정했다. 우리 자체 연구로를 자력으로 설계·건설·운영한 기술력과 해외 진출 경험 등을 높이 평가받았다는 전문이다.
가장 대견하고 뿌듯한 것은 세계 최대 시장이자 종주국인 미국에서 K-원전이 통했다는 사실이다. K-원전은 지난해 체코와 불가리아서 각각 24조 원, 20조 원 규모의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이 흐름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 연구용 원자로 시장만 놓고 봐도 시장성이 만만치 않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등록된 연구용 원자로는 총 847개로, 이 중 54개국 227개 연구로가 운영 중이다. 40년 이상 된 노후 연구로가 많아 대체·개선·증축 등 파생 수요가 꾸준히 이어진다. K-원전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국가전략기술인 선진 원자력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기술 고도화가 급선무다.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원전 생태계 육성도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선 ‘탈원전’ 망령이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범국가적으로 경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는 불합리하게 탈원전을 강행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멀쩡한 원전을 멈춰 세우고, 심지어 7000억 원을 들여 거의 새로 만든 원전을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 폐쇄하기도 했다. 국가적 자해 행위였다. 한국전력은 원전 감소분을 값비싼 LNG 발전으로 때워야 했다. 문 정부 5년간 한전이 부담한 추가 비용이 26조 원이다. 이런 기억이 생생한 만큼 6·3 조기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선택을 할지 눈길이 모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15일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가진 현장 간담회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원전 기술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시사했다고 한다. 원전산업 종사자들과 함께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등에 관한 의견도 나눴다. 문 정부 탈원전과는 다른 길로 가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불안감을 지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명쾌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재명 전 대표부터 탈원전 망령을 어찌 몰아낼지, 선명한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 큰 틀에서 문 정부의 탈원전을 답습하겠다면 그 또한 정직하게 밝힐 일이다. 그래야 대선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