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오늘도 나는 도서관엘 간다

입력 2025-04-1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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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스무 살 무렵 나는 등단을 꿈꾸던 문학청년이었다.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채 빈둥거리던 내게 자유는 넘쳐났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나는 날마다 서울의 한 시립도서관에 찾아가 빈 위장에서 연신 울리는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노래처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직업이 없던 청년은 늘 무일푼이어서 점심 끼니를 자주 걸렀다. 겨우 뜨거운 우동 국물을 사서 후루룩 삼키며 배고픔을 견뎠다. 정독도서관 구내식당에서는 도시락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뜨거운 우동 국물을 따로 팔았던 것이다.

“초록 이끼와 담쟁이넝쿨이/식민지 시대의 옛날 도서관의 적벽(赤壁)을 가렸다/옛날의 도서관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은퇴한다, 그러면 또 새로운 젊은 도서관들이/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나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첫사랑의 집 앞을 지날 때처럼 늘 가슴이 두근댄다//세상이 나를 마른 땅에 내팽개쳤을 때/나는 붉은 아가미를 벌렁거리며 버둥거렸다/그때 열일곱 살이던 소년은 시립도서관 찬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붉은 어둠이 밀려온 창밖을 내다본다/거기 캄캄하게 미래들이 달려온다/소년은 무서웠고, 그래서 도망간다”(졸시, ‘옛날의 도서관’)

설렘과 기쁨을 안고 도서관을 가던 그 아침들의 상쾌한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정독도서관에서는 시집과 철학책을 읽었다. 특히 가스통 바슐라르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책을 읽는 게 좋았다. 창문 너머로 햇빛이 환하게 비쳐들던 참고열람실에서 ‘촛불의 미학’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읽었다. 숲속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는 사람이 한 “이곳에서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은 세상이 아닌 내게 맞춰 흐른다”(아오키 미아코)라는 말에 공감한다. 나도 도서관에서 충일감과 고요 속에서 오직 손에 든 책에 몰입을 할 때 시간이 내게 맞춰 흐른다고 생각했다.

20대 중반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의 꿈을 이루고, 출판사에 취업을 하면서 바빠졌다. 그런 탓에 더는 정독도서관을 찾지 못했다. 도서관을 다시 찾은 것은 서른 몇 해가 훌쩍 지난 뒤다. 정독도서관에서 2주 연속 강연자로 나를 초청했다. 도서관 정원의 고만고만한 느티나무들이 거목으로 변한 것이 놀라웠다. 나는 격정에 휩싸인 채 두 시간 강연을 마쳤다. 반응은 뜨거웠다. 강연장을 찾은 많은 청중이 도서관에 습작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한 청년의 귀환을 반기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강둑에서 젖은 발을 말리는 집시소년을/보았다, 소년은 내게 도서관에 도착하거든/도서관의 지느러미들이 잘 있는가를 살펴봐달라고 부탁한다/누군가 그것들을 노리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거리에는 사내들이 거드름을 피며 걸어간다/기억과 욕망이라는 서가를 천 개씩이나 가진 도서관/새의 발자국이라는 제목의 책/나무 그늘이라는 제목의 책/찰나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책/나는 그 세 권의 책을 대출받아야 한다//나를 키운 것은 도서관이다/내 침울함을 치유한 것도 도서관이다/빗방울이 흰 종아리를 내보이며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아침에/나는 도서관으로 간다”(졸시, ‘도서관을 위하여’)

나는 단연코 도서관 키드다. 나를 키운 건 도서관이다. 날마다 도서관을 찾던 젊은 시절 도서관이 나를 환대한다고 믿었다. 지금 내가 아는 지식과 도덕과 교양은 모두 도서관에서 얻은 것이다. 젊은 날의 도서관은 내 어린 영혼의 인큐베이터이자 청정한 도량, 그리고 회복과 치유의 장이었다. 지금 내가 사는 파주 교하에 훌륭한 사서들과 장서가 풍부한 교하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벚꽃 만개한 봄날 오후, 나는 콧노래 흥얼거리며 걸어서 교하도서관엘 갈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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