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70여 개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를 유예했다. 상호관세를 발효한 지 약 13시간 만의 전격 후퇴다. 중국을 제외한 국가별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했다. 한국도 유예 대상이다.
이번 조치는 관세 후폭풍이 급속히 증폭되는 가운데 나왔다. 주식·국채 투매가 속출하는 등 패닉셀(공포에 따른 투매)이 벌어졌고, 경기 침체 우려도 커져 비판 여론이 뜨겁게 달궈졌다. 미국 일각에선 생필품 사재기 열풍마저 일고 있다. 13시간 만의 후퇴는 과도하게 변덕스러운 감이 있지만, 트럼프 특유의 ‘좌충우돌’을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선택인 것도 아니다. 역풍이 더 커지게 버려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주된 과녁이 중국이란 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중국도 잘 안다. 이번 조치는 대중 압박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에서 “중국은 세계 시장을 무시해 왔다”며 “중국에 부과하는 관세를 125%로 올리는 조치를 즉시 발효한다”고 했다. 중국과 지구촌을 분리하면서, 중국이 맞대응하면 손실이 커질 것이란 적신호도 켠 것이다.
트럼프는 앞서 전날 대중 관세를 104%로 올렸다. 여기에 21%포인트를 더해 125%를 들고 나선 것은 중국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비례 보복에 대한 추가 대응이다. 중국은 10일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84%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125%를 넘는 관세 추가 가능성에 대해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중국이 대응 수위를 높이면 얘기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치킨 게임이 어떻게 비화할지 현재로선 예단할 수 없다.
미중 대치만 바라볼 계제는 아니다. 우리 발등의 불도 뜨겁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관세 이슈와 묶자는‘ 패키지 딜’이 부상한 상황 아닌가. 트럼프는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한 뒤 자신의 SNS에서 ‘원스톱 쇼핑’이란 표현을 썼다. 트럼프가 한미 현안으로 간주하는 방위비 분담금과 관세, 조선·방산 협력, LNG·알래스카 투자 등을 한데 묶어 답을 구하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가치동맹 논리로 트럼프를 설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어떤 거래 기법으로 실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할지 거듭 성찰할 일이다. 대미 협상에 발 빠르게 나선 일본이 안전 보장과 에너지 협력 등을 아우르는 ‘정책 패키지’를 마련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9일 중국의 해양 패권을 저지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안보 전략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앞서 한국의 군함·선박 건조 능력을 상찬한 일이 있다. 우리에게 강력한 협상 카드가 있다는 뜻이다. 이번 관세 유예로 한숨을 돌렸지만 90일은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철저한 대비로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가장 급한 것은 우리 창고에 과연 어떤 협상 카드가 있는지 살펴보고 전력화하는 일이다. 조선만이 아닐 것이다. 손자병법도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