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탄·반탄 아닌 ‘더큰 우리’의 승리
극한대결 가라앉힐 인물 나왔으면

결국 그렇게 됐다. 윤석열, 우리는 그 이름 석 자를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호기롭게 등극했다 치욕적 파면으로 끝난 파멸의 대명사로 기억할 것이다. 탄핵파면은 자초지화였다. 천하의 우둔과 아집으로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불장난의 끝이었다. 결과는 처참하다. 온 나라 모두가 힘을 모아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위기와 격동, 정치경제적·지정학적 도전들, 자연과 사회의 재난들을 제때 제대로 대처할 기회를 놓쳤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 피와 땀을 강요했다.
가장 큰 재앙은 ‘심리적’, ‘사실상’이란 접두사가 붙은 내전, 온 국민을 살벌히 두 쪽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이제 헌법의 단죄는 됐지만, 상실과 고통, 그 깊은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우리의 삶을 물심양면 후벼파며 괴롭힐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증거했다. 무혈 시민혁명?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었는가? 험난한 현실이 눈앞에 있다. 무엇보다 분열이 깊다. 대통령의 무모한 비상계엄은 안 그래도 갈라 찢긴 분열을 내전 수준으로 격화시켰다. 그로 인한 정치적 극화(polarization)는 앞으로도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탄핵파면 결정 직후 정치 원로들을 위시하여 각계각층, 언론 등에서 국민 대통합을 주문한다. 누군들 통합을 말하지 않을쏜가. 바야흐로 조기대선 정국인데 통합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자 누굴까. 그러나 과연 누가 나서서 어떻게 통합의 길을 열어젖힐 수 있을까? 우리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누구도 이 파탄을 해결할 수 없을지 모른다. 대통령 파면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란죄 우두머리로 단죄하더라도 그 엄청난 재앙에 대한 죄책을 제대로 물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번 파면 결정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면서도 여야 간 극한대립과 그로 인한 국정혼란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바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여야가 서로 치고받더라도 좀 금도를 지키고 북한의 위협이나 최근 트럼프의 관세폭거 같은 경제적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사정이 녹록지 않은 것은 알지만 정치권이 나서서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며 장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의 여건을 마련하는 데 좀 힘을 쏟아주었으면 한다. 협치? 뭐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죽자고 물고 뜯는 이전투구만 멈추기를 바랄 뿐이다.
서로 마주 보고 사생결단 돌진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양비론자는 상종 못 할 사람이라고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양비론이 현실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대놓고 나서기는 위험했어도 목표는 분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권력욕이나 극렬 정쟁, 부정부패와 비리는 보수나 진보나 다를 바 없음을 실화로 목격했다. 그런 상황,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믿을 수 있는, 신뢰감이 가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가족, 측근만 감싸지 않고 잘못을 부하들에게 돌리지 않는 그래도 정직한 사람, 그래 좀 믿을 만한 사람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자기 말이나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인물을 믿지 못한다고 뭐라 할 수 있을까. 의도는 금방 드러나게 돼 있다. 소위 지도자입네 하는 인물들이 벌인 뻔한 어지러운 말잔치는 신물이 난다. 왜 모르겠는가. 그 속내를.
이번 대통령 파면 결정은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나 만장일치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만의 작품이 아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내려진 결정이다. 동시대인의 생각, 시대정신을 탄핵심판을 통해 대변한 것이다. 반탄에 대한 찬탄의 승리가 아니라 ‘더 많은 우리’의 승리다. ‘더 많은 우리’란 반탄이나 찬탄 어디에도 적극 가담은 않지만, 탄핵파면이 옳다 여기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극렬 전횡을 일삼은 여의도 정권의 행태도 마뜩잖은, 이제 파면 결정으로 그 저열한 극한대결이 좀 가라앉으면 하는 커다란 민심이다. 정치권에서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할 때 그 중원에 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우리’, ‘더 큰 우리’다. 이제 그들이 ‘우리가 국민이다’라고 외치며 매의 눈으로 대선정국을 감시하고 대표자 선출을 주도해야 할 때다. 대권을 꿈꾼다면 누구든 이 ‘더 많은, 더 큰 우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