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 칼럼] ‘최후인간’으로의 전락은 막아야 한다

입력 2024-04-17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김정래 칼럼니스트ㆍ前 부산교대 교수

‘여당 최악-야당 차악’ 드러난 표심
대통령 불통 이미지 결합하며 참패
수치심 없는 최후인간들에 면죄부
자유민주주의 질서 수호 진력해야

여당의 총선참패에 국가 안보와 사법 시스템 붕괴 우려와, 대통령의 오만과 독주에 대한 합당한 대가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이 평가로는 문제의 심층을 파악하기 어렵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최후 인간’은 이번 총선 결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의 종말’을 내세운 그의 논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이상의 어떤 체제는 없으며 이를 대체할 어떤 진보적 대안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각종 사회문제는 이 체제를 미숙하게 운용하는 데 따른 것이지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른바 진보 세력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부정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이 점에서 참패한 여권은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 수호에 더욱 진력해야 한다. 의석수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한미동맹, 대북 제재, 국정원 대공 수사권을 강화해야 한다. 재판 지연 등 사법 시스템 무력화를 막아야 하고, 급증하는 마약사범과 초대형 경제사범을 단죄하기 위하여 검찰 수사권을 회복하거나 적어도 지금보다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온갖 선심성 법안, 탈원전 법안 등 야당의 입법권 남용을 그들처럼 ‘악랄하게’ 저지해야만 여권 스스로 처절하게 호소한, 대통령 탄핵과 개헌 저지선을 지켜준 유권자에게 보답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국민이 후쿠야마가 주장한 ‘최후 인간’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에 따르면 ‘최후 인간’은 자신의 너저분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자기애를 서슴없이 저버리는 데 급급한 사람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하찮은 욕망을 넘어설 용기도 없고 성취를 포기한 데 따른 일말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패기가 없는’ 최후 인간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헤겔의 주인-노예 인정 투쟁에 뿌리를 둔 후쿠야마의 최후 인간은 스스로 ‘인정 투쟁’을 포기한 사람이다. 따라서 패기 없는 최후 인간이 아니라 니체의 ‘위버멘쉬’처럼 타인과 평등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뛰어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국민의 ‘인정 심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이 된다.

이번 총선도 인정받고 싶은 유권자의 인정 심리가 어김없이 드러났다. 생계에 매인 서민들에게 여권 프리미엄으로 제시하는 철도 지하화와 같은 굵직한 공약보다는 지난 정부의 현금 살포가 자신들의 인정받고 싶은 심정에 더 다가온 것이다. 물론 이 심리가 결코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지만, 이것이 작동하게 된 것은 부정 여론이 2년 내내 이어진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호재가 많았던 여권 우세 지역에서도 오해를 자초한 몇몇 조치와 언행이 유권자의 인정 심리를 상하게 하여 1% 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바뀐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다만 유권자의 인정 심리가 운동권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심하게 왜곡된다는 것을 이번 총선이 보여주었다. 안희정, 박원순 사건의 ‘피해 호소인’처럼 수원 정 야당 후보의 막말 사태는 여성 운동권의 미온적 태도로 인하여 유권자의 인정 심리를 왜곡해 버렸다. 하지만 그 선거구의 무효표가 두 후보의 격차보다 2배 많았다는 점에서 막말 당사자 후보를 차악으로 보고 집권 여당을 최악으로 판단한 인정 심리가 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또한 이번 총선은 인정 투쟁이 왜 중요한지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 대선 때 당시 정권에 실망한 중도층 도움으로 신승(辛勝)했던 점을 망각하여 참패하였지만, 그나마 개헌 저지선 사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자의 인정 투쟁 결과임을 새겨야 한다. 중도층의 표심을 잡겠다면서 그들의 인정 심리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은 참패를 낳은 여권의 인정 투쟁 포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인정 심리를 외면하거나 스스로 인정 투쟁을 포기하면 ‘최후 인간’이 된다. 거대 의석을 믿고 저지르는 야당 독주와 자신의 죄에 대한 반성은커녕 사적 복수심에서 나온 수사기관의 악마화는 유권자의 인정 심리를 교묘히 외면하는 것이고, 김명수 사법부 이후 정치권 눈치 보기로 자행되는 재판 지연은 법관 스스로 인정 투쟁을 포기한 저열한 경우다. 이처럼 비루한 경우 ‘최후 인간(The Last Man)’을 ‘인간 말종’이라고 번역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단독 ‘작업대출’ 당한 장애인에 “돈 갚으라”는 금융기관…법원이 막았다
  • "중국 다시 뜬다…"홍콩 증시 중화권 ETF 사들이는 중학개미
  • 극장 웃지만 스크린 독과점 어쩌나…'범죄도시4' 흥행의 명암
  • 단독 전남대, 의대생 ‘집단유급’ 막으려 학칙 개정 착수
  • '눈물의 여왕' 결말은 따로 있었다?…'2034 홍해인' 스포글
  • 오영주, 중소기업 도약 전략 발표…“혁신 성장‧글로벌 도약 추진”
  • 소주·맥주 7000원 시대…3900원 '파격' 가격으로 서민 공략 나선 식당들 [이슈크래커]
  • 근로자의 날·어린이날도 연차 쓰고 쉬라는 회사 [데이터클립]
  • 오늘의 상승종목

  • 04.29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89,716,000
    • -1.76%
    • 이더리움
    • 4,527,000
    • -5.23%
    • 비트코인 캐시
    • 657,000
    • -4.64%
    • 리플
    • 736
    • -1.21%
    • 솔라나
    • 192,300
    • -6.33%
    • 에이다
    • 648
    • -3.86%
    • 이오스
    • 1,142
    • -2.31%
    • 트론
    • 170
    • -1.16%
    • 스텔라루멘
    • 159
    • -2.45%
    • 비트코인에스브이
    • 92,200
    • -4.41%
    • 체인링크
    • 19,870
    • -2.12%
    • 샌드박스
    • 626
    • -5.1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