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국회는 '밀러 행성'을 탈출하라

입력 2024-02-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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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1시간은 당신의 7년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는 인듀어런스(Endurance) 호를 타고 ‘밀러 행성’에 도착한다. 밀러 행성은 엄청난 중력의 블랙홀 ‘가르강튀아’ 가까이에 있기에 시간이 지구보다 6만배 이상 천천히 흐른다.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과 맞먹는 것이다.

국회는 흡사 밀러 행성과 같다. 국회에서 흐르는 1분이 의사당 담장을 넘는 순간 영겁의 기다림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1분,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이 표결에 부쳐져 의결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어떤 이의 6년은 이 찰나의 시간 속에 압축된다.

2017년 1월 20일로 시계 바늘을 돌려보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날. ‘가결’을 알리는 의사봉 소리에 누군가는 눈물을 터트렸을 것이다. 그날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세퓨 살균제’ 피해자와 3·4등급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처음 마련됐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불거진지 6년 만의 변화였다. 본회의장에서의 1분이 피해자 유족에겐 6년이었던 셈이다. 국회의 시간은 그토록 무겁다.

얼마 전, 중대재해처벌법 추가 2년 유예안의 본회의 처리가 불발됐다. 여당이 산업안전보건청을 설치하자는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야당은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후 2시 예정돼 있던 본회의는 3시 30분이 되도록 열리지 못했다. 민주당이 중재안 수용 여부를 두고 1시간 30분 난상토론을 이어간 탓이다.

83만 자영업자·소상공인과 수많은 중소기업계가 민주당의 입만 바라보며 피말리는 시간을 견뎠다. 그들에겐 1분이 하루 같았을 것이다. 장고 끝에 민주당은 거절의 뜻을 밝혔다. 중기계 등 법 적용 대상자들의 우려에 대해선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여야 간 협상이 블랙홀에 빠져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또 한번 무한한 기다림에 기댈 수밖에 없어졌다.

‘시간’은 총선을 앞둔 국회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영영 법안 처리의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제2의 ‘중처법 사태’가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21대 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정쟁에 잠식돼 처리되지 못한 민생 법안들이 산적하니 말이다. 실거주 의무를 완화하는 주택법 개정안,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시설을 설치하는 고준위법도 여전히 잠들어있다. 여야가 이미 총선 모드에 돌입한 만큼 법안 처리의 데드라인을 넘겼단 비관론도 나온다.

밀러 행성을 겨우 탈출한 쿠퍼는 23년이나 늙어버린 동료를 마주해야 했다. 시간을 지체한 죄로 백발 노인이 된 딸의 임종도 지켜봐야 했다. 이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21대 임기 막바지, 몇 번 남지 않은 협치의 기회마저 스스로 발로 차버린다면 국회도 거대한 역풍의 파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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