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어느 예술가의 죽음

입력 2023-08-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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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먼저 레지던트 수련을 마친 선배의 말이었다. “수련을 다 받고 보니 의술은 예술이었다.” 병원에만 갇혀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있던 나를 밖으로 불러내 자기의 수련 소감을 이야기하는 선배의 말이 그저 부러웠던 것은 나는 또다시 병원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러기에 처음 쐬어보는 것 같았던 햇빛이 감미로워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 또한 수련을 다 마치고, 임상의사가 되어 내 환자들을 보기 시작하니 의술은 예술이라는 선배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질병의 병태생리와 진단 기준, 치료 방침을 정하는 알고리즘, 수많은 시술과 수술, 처방 등이 ‘한 사람’이라는 환자에게 적용될 때는 환자의 병력, 가족력, 가족관계로부터 시작해 심지어 경제적 상황까지도 고려하여 이루어진다. 때로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빠른 회복을 원하는 환자의 기대마저도, 혹은 완벽한 치료를 원하는 나 자신의 조급함마저도 당겼다 놓았다 해야 하는 긴장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새 나 또한 후배들에게 의학은 ‘예술’이라고 자연스레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예술가들의 그 예술이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내가 말한 예술이란 것이 의술이 환자에게 적용될 때 세심하고 정교한 기술을 빗댄 것이라면, 예술가들에게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기이자 목적이었고 때론 자신의 생명보다도 우위에 둘 수 있는 것이었다. 가히 예술이라는 것이 은유가 아닌 서술로서 자신을 소개할 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화가의 임종을 지켜봤다. 곧 있을 전시회를 준비하다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는데 그날 밤 황망하게 돌아가셨다. 그의 작품들은 많은 위로를 주었고, 예술을 향한 그의 삶과 정열을 통해 도전도 받았다. 그리고 나의 의술도 예술의 경지에 오르게 하려는 마음에 그와 자주 만나고 전시회를 방문하고 예술에 대한 그의 자세를 나의 의술에도 접목해보려 노력했었다.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의 통곡 속에서 하얀 시트 밖으로 나온 그의 차가운 손을 보았다. 그의 손에는 물감이 묻어있었다. 그는 삶을 살아내는 내내 예술가였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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