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감이다

입력 2023-05-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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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수 브라운백 대표

우리나라 화장품 브랜드(제품 수가 아닌 브랜드 수)는 2020년에 2만여 개를 돌파했다. 건강기능식품과 건강보조식품 브랜드도 이미 수천 개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자들의 기호를 사로잡기 위한 노력은 이제 식품을 넘어서 뷰티와 건강으로 대변되는 웰빙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고객이 자주 찾는 유통채널에서 해당 제품들은 대표적인 PB(Private Brand: 위탁의뢰해서 제조한 제품에 유통업체 자체개발 브랜드 상표를 붙여서 판매하는 브랜드)의 공략대상이 됐다. 과거 건전지, 화장지 등 단순 공산품 위주로 시작된 PB 라인업이 이제 개인화된 기호의 영역까지 확장하게 된 것이다.

이마트는 피코크 매출이 2021년 기준 4000억 원을 돌파하는 한편, 자연주의란 브랜드로 일본 MUJI 브랜드를 벤치마킹해 생활용품부터 화장품까지 아우르며 매스티지 시장에서도 다양한 라인업을 공략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오래전부터 커클랜드 상표로 건강기능식품뿐 아니라 와인과 커피, 가전까지 취급하고 있다. 아마존은 아마존 베이직, 쿠팡은 곰곰 등으로 전선에서 도시락까지 다양한 품목을 다룬다.

화장품 브랜드 2만개…치열한 경쟁

적자를 돌파하기 위해 수년간 노력하고 있는 쿠팡이나 한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오랜 시간 떨치지 못하는 이마트를 보면 이들도 절박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을 담고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2만 개가 넘는 화장품 브랜드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변화가 일어난 배경은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도 있지만, 품질의 상향 평준화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제는 단순 공산품뿐 아니라 어떤 제품도 1차적인 기능은 당연히 채우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비타민도 성분을 비교하지 특정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신박한 효능을 내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홍삼도 함량을 살피며 가능한 한 합리적 선택을 하려고 애쓴다. 유통사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같은 성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소구한다.

그런데 누구나 비슷한 품질의 물건을 만드는 시대라면 결국 고객을 많이 갖고 있는 유통사가 갑이 될 법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흥미롭다. 각 카테고리 1위들은 오히려 탈(脫)유통채널화하거나 유통채널과 대립하기도 한다. 아마존을 떠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성공사례로 이야기되는 나이키, 쿠팡과 맞서 햇반을 자체 스마트스토어로 유통하기로 한 CJ 등은 그런 파워게임의 첨예한 공방을 보여준다.

흔들리지 않는 압도적 고객 충성도를 가진 세계 최고의 브랜드 애플은 핵심 유통 채널인 통신사와 거래할 때 할인율도 박하게 주는 한편, 모든 광고비를 통신사에 부담시키고 애플의 로고 크기, 색상, 위치까지 지정하며, 물품의 배송과 출시일 및 최종 가격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통신사뿐 아니라 유통사도 애플이 원하는 가격, 수량, 문안으로 하나하나 검열받고 판매한다.

사업 운명, 고객 사로잡는 데 달려

결국 고객의 마음을 누가 사로잡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상인은 인류의 기원과 함께 시작된 직업이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이들의 가장 큰 자산은 공급이 쉬워진 지금 시대에는 수요 측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커머스까지 이어진 고객 장악의 중요성은 자유무역의 발달과 함께 유통의 시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고객은 그저 좋은 제품을 한 곳에 많이 모아놓은 유통에 이제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손가락 몇 번이면 모든 제품의 가치와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이제 유통의 시대가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감이다. 투자로 트래픽을 모아서 언젠가 수익화를 꿈꾸는 스타트업도, 대를 이어 수십 년간 내공을 쌓아온 일반 기업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회사가 된다면 배달의민족과 삼진어묵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전에 실패를 맛보고 만다. 연구개발(M&A) 시장이 성숙하지 못한 국내의 경우 기업공개 기준으로 스타트업의 성공확률은 0.2%에 불과하다. 유통 제국도 정글 속에서 싸우는 지금,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고객을 사로잡는 존재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업의 운명을 유통사나 갑이 아니라 초연결시대에 걸맞게 고객과의 맥락에서 찾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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