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초보 골절러의 목발일기

입력 2023-04-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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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수 브라운백 대표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발을 헛디뎠다. 제대로 삔 것 같아 집에 와서 잠들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보니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무언가 제대로 탈이 난 것이 분명했다. 집 근처 재활의학과에 바로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보자마자 혀를 찼다. 부러진 것이다.

발가락 뒤의 발등뼈가 부러진 것을 중족골 골절이라고 한다. 나는 금이 간 것도 골절의 범위에 들어가는 줄 몰랐던 초보 골절러였다. 병원에서는 금요일에 반깁스를 해주며 향후 프로세스를 알려줬다. 월요일에 부기가 빠지면 본깁스 또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은 정형외과에서만 가능하며, 치료에는 6~8주, 재활에는 2~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완전한 날벼락이었다.

목발도 나는 처음이었다. 집까지 오는 길이 한없이 멀었고, 몸이 불편하면 어떤 처지인지 절실히 느꼈다. 세상은 나를 불편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계단은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도 몰라 쩔쩔맸고, 목발 신세에 물건을 들고 움직이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화장실 하나 편히 가지 못했다. 다치지 않은 왼발에 무게가 온통 실리니 그쪽마저 피로했고, 식욕은커녕 짜증만 가득했다.

돌아와서 무거운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는데, 아내가 지나가듯 이렇게 이야기했다.

“평소답지 않은 것 같아. 벌써 여기저기 찾아보고 했을 것 같은데?”

그때 알았다. 나는 좌절감에 굴복한 것이었다. 난생처음 겪는 골절이란 고난과 목발 신세는 나를 그렇게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 세상은 원래대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다친 발등뼈는 제5 중족골(새끼발가락 뒷부분)로 추정되었다. 환자들의 수기를 검색하니 다들 좌절감이 가득했다. 뼈는 시간이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이나 진료보다 깁스로 고정하고 체중이 실리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불편했는지, 누가 운전을, 식사를, 샤워를, 거동을 도와줬는지, 얼마나 오래 걸렸으며 치료 후 깁스를 풀어보니 그동안 쓰지 못한 영향으로 얼마나 앙상한 다리를 발견했는지 등이 가득했다. 어떤 치료가 유용한지는 찾기 어려웠다.

골절 선배님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나는 사소한 부주의로 몇 달을 불편하게 살아야 하며, 회사 일과 미팅은커녕 생활조차 어려울 판이었다. 몇 달 뒤에도 운동은 꿈도 못 꾸며 재활을 먼저 해야 했다. 지난 4년간 매일 하는 명상-요가-운동-독서의 아침 루틴은커녕 몸과 마음이 폭삭 늙는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집 근처 병원을 알아보던 중 한 논문이 눈에 들어왔다.

1년도 되지 않은 논문이었다. 그 논문의 내용은 한마디로 내가 다친 ‘중족골은 체중이 많이 실리지 않을 수 있는 부위여서’ 상당한 경우 ‘깁스 대신 의료용 신발로도 대체 가능하며 이동도, 씻는 것도 훨씬 편리한 방식으로 나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당 논문을 작성한 분은 한림대학교의 김형년 교수님이었고 현업에서 발 전문 진료를 하고 있었다.

중병에 걸린 환자들이 무안단물이라도 찾는 심정으로 나는 얼른 전화를 걸었다. 원무과의 간호사는 친절한 목소리로 해당 교수님의 진료는 두 달 뒤에 가능하다고 했다. 그때쯤이면 나는 아마 뼈가 다 붙어서 목발을 불태우고 있을 것이었다. 2개월 대기 3분 진료라는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현실과 건강보험제도의 한계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에 마법의 단어가 들렸다.

“잠깐만요. 예약한 분이 조금 전에 취소하셔서 내일 아침 한 자리가 비었네요. 오시겠어요?”

다음 날 나는 긴장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상당한 경우’에 해당하는지가 꿈에도 나올 정도였다. 목발을 짚으며 택시를 타고, 접수를 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이 1년 같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유심히 엑스레이를 보신 후 다음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깁스 안 해도 되겠네요. 목발도 안 해도 됩니다.”

그 뒤의 대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나는 다시 일상을 찾았다. 다소 통증은 있었지만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고, 아침에는 여전히 명상하고 의자요가를 한다. 운동은 턱걸이와 딥스처럼 하체에 부담이 가지 않는 쪽으로 하니 그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몸이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 세상이 내 편 같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해서, 오지 않은 어두운 미래를 미리 상상하고 좌절하는 것에 관해서, 희망을 찾기 전에 웅크려 있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것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라는 주문이 나에겐 이렇게 돌아왔다. 인생은 골절과 함께 좌절감을, 좌절감에 이어 해결책을, 그리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과 시야를 가르쳐주었다. 삶의 준비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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