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尹정부의 피터팬 때리기

입력 2023-03-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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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울타리서 어른이 되지 못한
'관치' 계획표대로 살아온 금융사
尹 정부, 때리는 게 아닌 키우는 개혁 필요한 때

이건 바로 짚고 넘어가야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때리기가 과도하다며 시대착오적이라고 한다. 금융산업을 20년 전으로 되돌리는 행태라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틀린 얘기다.

“금융 규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규제와 감독을 전면 재검토하고, 금융법을 완전히 재정비해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고, 한국을 아시아 3대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

얼마 전 누군가 했던 말인가 싶겠지만, 무려 20여 년 전인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아시아 금융허브 전략 로드맵’ 에서 나온 구상이다. 지금 정부는 금융허브는 커녕 은행을 ‘공공재’로 만들어 놨으니 20년 전 운운 하는 얘기는 하지 말자. 저 로드맵을 입안했던 관료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 물 일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공동 집필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이 있다. 두 교수가 말하는 골자는 간단하다. 엄청난 전쟁이나 쿠데타 같은 사건 때문에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올린 민주주의적 ‘문화’가 무너지거나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 바로 붕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상대 입장을 존중하고, 선을 넘지 않게 자제하고, 협력이나 때로는 타협하는 것 따위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파괴하는 것이 전제정치의 징후라고 두 사람은 지적한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 같다면 기분 탓이다.

어린 시절 변호사를 준비하던 친척에게 물었던 말이 생각난다. ‘의뢰인이 진짜 유죄면 어떻게 하느냐, 검사에게 사실대로 고하는 게 맞지 않느냐’. 친척의 대답은 명확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철저히 무죄라는 입장에서 변호하는 게 일이다. 죄는 검사들이 묻겠지.”

반대로 생각하면 검사들은 죄를 묻는 직업이다. 그들에게 상대방이 ‘무죄’일 가능성은 없어야 한다. 무죄 판결이 난다면 무엇인가 검사가 실수하거나 능력이 부족해서지, 상대가 진짜 무죄일 가능성은 없다는 게 그들 사고의 작동 방식이다. 잘못될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고 대응하도록 훈련된 직업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사들을 때리는 이면에는 어쩌면 금융에 대한 일종의 혐오가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드는 이유기도 하다. 현대 시대 금융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고래로 돈을 만지는 소위 ‘돈놀이’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유럽에서도 금융업이 대접이 낮았던 유대인들의 전유물이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검사의 시각으로 보면 금융사들이 ‘죄인’처럼 보일 수 있다. 가만 보면 크게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자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게 마뜩잖게 보일 법도 하겠다.

그런데 작금의 금융산업이 이렇게 된 것은 결국 지금의 정부처럼 역대 대부분의 정권이 금융사를 쥐고 흔들어 왔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돈을 벌면 벌었다고 욕먹고, 부실해지면 나라가 망할 듯 난리를 친다. 규제의 울타리 속에서 어른이 되지 못한 피터 팬처럼 ‘관치’가 짜준 계획표대로 살아왔던 게 이 나라 금융사들의 현실이다.

금융 개혁은 필요하다. 그런데 때리는 개혁이 아니라 키우는 개혁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이미 20년 전의 정권도 규제의 전면 재검토를 지적했다. 20년이 흐른 지금 어떤가. 은행을 ‘공공재’에 빗대고, ‘성과급’으로 드잡이질 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한국을 홍콩,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금융의 허브로 키우겠다는 것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제조업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빅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금융산업이 커져야 한다고 믿었다. ‘나비효과’로 고급 일자리가 늘어나고 청년들의 실업도 해결될 것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안타깝게도 사실상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의 은행 때리기가 금융산업을 퇴행시킬 거라는 말은 하지 말자. 차라리 그때의 금융정책이 지금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훨씬 멋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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