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재벌집 막내아들’ 속 한국의 오너

입력 2023-01-27 05:00 수정 2023-01-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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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마지막 회 시청률 26.9%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은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금을 건넨다. 이 자리에서 진양철 회장은 반도체 생산의 독점권을 달라고 청탁한다, 다른 기업에는 주지 말라며.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반도체가 무엇인지 그때만 해도 정부 안에서는 아는 이가 없었다. 그러니 독점을 얘기할 이유도 없고 정부가 교통정리에 나설 상황도 아니었다.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할 당시 내부 분위기는 회의적이었다. 후계자였던 이건희 부회장이 하자고 해 시작은 했으나, 일감이 없어 직원들은 출근과 함께 공장의 잡초를 뽑는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삼성이 고전하는 걸 본 다른 기업들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삼성이 독점하게 됐다.

그런데 순양그룹의 진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위해 당선자에게 축하금을 바쳤다? 이런 황당한 설정에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드라마 속에서는 그럴듯하게 그려졌다. 삼성은 지금 반도체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당선 축하금을 항상 줬다. 허구와 현실이 그럴듯하게 뒤섞이니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다. 이것이 한국의 오너가 사업마다 맞닥뜨리는 국민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오너 3심(心)’(2021년 4월 19일 ‘재계 프리즘-오너 3心과 기업가 정신’ 참조)이 소환됐다. 순양 진양철 회장은 손자 진도준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줄 뜻을 비치며 오너는 오장육부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욕심과 의심과 변심을 일러줬다. 시청자들은 공감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오너들은 탐욕스러워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문어발처럼 확장했다. 욕심 때문이다. 가족 간에도 믿지 못하니 골육상쟁이 벌어진다. 재벌가에서 흔하게 봤던 의심이다. 거기다 창업 동지들을 내치고 수족은 자르며 배신을 일삼는다. 변심의 귀재들이다. 시청자들이 공감할 부분도 있고 이런 정서는 오너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오너들은 맨주먹으로 반도체,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에서 세계적 기업을 키워냈다. 같은 시대의 어느 누구에게는 좌절할 이유로도 충분했지만, 그들은 욕심으로 기업을 키웠다. 공장이고 사무실이고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 할 정도로 초창기의 경영은 주먹구구식이었다. 경영의 원칙을 세우고 실행 시스템을 정착시킨 것은 의심의 덕분이었다. 골목 친구 몇몇이 같이 창업했다가 기업이 커가면서부터는 다른 생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바깥에서 인재를 영입해 역량을 펼치게 했다. 갈라섬을 변심이라 하면 이것은 기업에 새살이 돋는 마중물이 됐다. 욕심, 의심, 변심의 오너 3심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기업가 정신으로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진양철 회장은 이를 정확히 표현했다.

사업은 연기가 나야 된다는 것이 진양철 회장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의 손자가 회사를 사겠다고 하자 사업은 ‘돈쪼가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무랐다. 산업화 시대의 논리였다. 그러나 ‘돈쪼가리’를 금융 산업으로 인식하면서부터 그는 지주회사라는 선진적 지배구조를 구상했고 중심에 금융을 놓았다. 우직했지만 변신은 신속했고 미래를 보는 눈은 날카로웠다.

그는 “그게 돈이 되는 기가?”를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모두가 반대하는 반도체를 시작하면서도 그는 반도체가 돈이 된다고 봤다. 앞으로는 기술 장사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전자 계열사가 국내 1위라고 자랑하는 장남에게 “국내 1위, 니 어디 전국체전 나가나?”고 힐난하며 세계를 향해 베팅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래와 세계라는 두 겹의 전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다음은 자동차, 그는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봤다.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 회의에서도 한 말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오너의 독단이고 아집, 망상이라고 했다. 그는 좌절했다. 이것이 오너가 처한 한국의 경영 환경이다.

‘재벌집 막내아들’ 속 손자는 새 삶을 시작해 통쾌하게 승승장구했다. 성공에 결핍된 이 시대의 1차원적인 욕망을 건드렸고 시청자들은 대리로라도 만족을 얻었다. 오너 진양철 회장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 앞에만 서면 모두가 굽신거렸다. 그러나 측근들은 배신을 일삼았고 심지어 가족의 손에 죽을 뻔도 했다. 외롭지 않겠는가? 그는 결국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쓰러졌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오너는 그만큼 외로웠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해피엔딩이기를 바랐던 간절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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