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감사해' 쓴 김혜자 "그래도, 멋있어, 강수연"

입력 2023-01-0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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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감사해' 책표지 (교보문고)
▲'생에 감사해' 책표지 (교보문고)
“그래도, 멋있어, 강수연. 배우답게 갔구나. 그곳에서 만나.”

배우 김혜자는 새 책 '생에 감사해' 첫 장에서 고인이 된 배우 강수연을 향한 애틋함을 전했다. "갓 스무 살 넘은 나이에 세계적인 무대(베니스 국제영화제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타고, 너무 어려서 월드스타가 되고 나니 아무 것이나 할 수도 없고 아무 것도 안 할 수도 없게 된 것"이라는 문장에는 배우의 숙명에 오롯이 공감할 수 있는 이의 이해가 담겼다.

지난달 22일 출간된 ‘생에 감사해’는 배우 김혜자의 삶과 생각, 주변과의 인연을 편안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낸 에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우울한 성품을 타고났다”는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난 뒤까지도 여러 차례 지독한 허무감에 시달렸음을 담담히 고백한다.

배우의 길을 선택한 건 아버지의 지지 덕분이라고 썼다. 책에는 “찰리 채플린을 봐라. 웃기는 짓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아니?”라던 그의 말을 복기해 뒀다. 그의 아버지 김용택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경제학 박사이자, 미군정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고위 관료 출신이라고 한다.

‘마더’로 깊은 인연을 맺게 된 봉준호 감독과의 에피소드는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봉 감독은 ‘마더’ 캐스팅을 위해 5년 동안 잊을 만하면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고, 연극 무대까지 찾아오는 지극한 정성으로 자신에게 “’마더’의 ‘혜자’를 각인시켰다”다고 했다.

봉 감독은 현장에서 “선생님, 눈만 동그랗게 뜨지 마시고요!”라고 지적할 줄 아는 감독이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연기가 못내 불만스러워 촬영장을 뛰쳐나간 자신에게 “자신의 성에 안 차겠지만, 세상이 환호할 때는 인정하세요”라는 문자를 보낼 줄 아는 연출자였다고 기억했다.

당시 단역으로 출연했던 이정은과는 이후 드라마 ‘눈이 부시게’, ‘우리들의 블루스’에 함께 출연하게 된다. 김혜자는 그를 두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자신의 길을 개척한 모습이 여실히 보인다. 그래서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그러면서도 성품이 때 묻거나 비틀려지지 않은 것이 참 마음에 든다”고 칭찬했다.

‘전원일기’, ‘간난이’, ‘여’, ‘장미와 콩나물’, ‘엄마가 뿔났다’, ‘청담동 살아요’, ‘디어 마이 프렌즈’ 등 대중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에 끝없이 출연한 김혜자에게는 작품에 출연하는 중요한 기준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인생의 속박에서 고통받는 역이라 해도 그 속에 바늘귀만 한 희망이 보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솔직한 고백은 간혹 웃음을 끌어낸다. “’눈이 부시게’ 촬영할 때 카메라가 얼굴을 밑에서 잡으니, 콧구멍이 무슨 터널처럼 크게 나왔다”면서 “시청자들도 댓글로 ‘콧구멍 크다’고 타박하더니 이제는 또 서로 ‘너도 나이 먹으면 살이 얇아져서 콧구멍 커진다’고 야단을 친다”고 했다.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정작 자신은 “이 사람들이 참 다정도 해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배우로서 외모가 특별히 예쁘다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쪽은 아니었다고 돌이키면서도, 그는 꾸준히 연기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전한다.

‘전원일기’에서 김정수 작가가 하차하면서 자신의 출연 비중도 함께 줄어들었을 때를 떠올린 그는 덕분에 시간적 여유를 얻게 돼 ‘모래성’, ‘사랑이 뭐길래’, ‘장미와 콩나물’ 등에 출연할 수 있었다면서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말은 삶의 진리”라고 썼다. 반복되는 일상에 모든 종류의 감각이 무뎌진 독자라면, 삶과 생에 감사하다는 그의 진솔한 메시지와 부담 없이 만나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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