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플랫폼] 희망절벽을 마주한 사람들

입력 2022-12-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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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람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덴트가 2014년 발간한 ‘인구절벽’이라는 제목의 책이 2018년 국내에 소개된 이후, ‘절벽’이라는 용어는 한국사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되었다. 바닷가 혹은 높은 산 가장자리의 가파른 낭떠러지를 일컫는 이 용어는 경제불황, 사회적 고립 및 관계의 단절, 그리고 사회보장 사각지대의 심각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중에 ‘희망절벽’이라는 표현은 2030세대의 암울한 미래뿐만 아니라 삶을 포기하기 직전의 사람들이 마주치는 공통된 절박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희망절벽을 마주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희망절벽은 세대별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10대 청소년에게는 경쟁과 폭력이 주된 위험요인으로 나타났다. 학업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언어폭력, 집단 따돌림, 사이버폭력으로 이어지거나 때로는 강력범죄인 살인, 강도, 강간, 강제추행, 방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때 10대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부모의 불화 및 가족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더 이상 삶을 지속하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30세대에는 생존과 불안이 주된 위험요인으로 나타났다. 부모로부터 안정된 기반을 지원받지 못한 청년들에게 일자리 경쟁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소위 ‘꿈보다 취업’은 냉혹한 현실이다. 밀린 월세와 공과금, 그리고 잦은 굶주림은 소극적 자살로 할 수 있는 고독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가 산업재해 등으로 신체적 건강이 악화된 경우 의료비 부담과 실업의 악순환은 이들을 더욱더 희망절벽으로 몰아붙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세대의 고독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믿기 힘들다. 그러나 일찍부터 친구와 선배 후배들조차 취업의 경쟁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2030세대의 현실을 이해하면, 이들 세대의 사회적 관계의 밀도와 강도가 다른 세대에 비해 더욱 약한 것은 애석하게도 쉽게 수긍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사회적 고립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사회 속 인간’이라는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그만큼 희망절벽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다.

역할과 책임이 4050세대에 삶을 포기하게 하는 주된 위험요인이라는 사실은 1997년 외횐위기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현실이다. 갑작스런 실직과 파산, 가계부양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자괴감, 출산 및 육아기 이후 경력단절과 약화된 사회적 존재감은 4050세대에 가장 압박감이 큰 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더욱이 한국사회에서 자영업, 일용직,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자 등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 4050세대의 실직으로 인한 소득상실이 높은 자살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현재 사회보장 안전망의 가장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2030세대 또한 중심부 노동시장에 쉽게 진입하기 어렵고 이로 인하여 쉽게 그리고 오랫동안 주변부 노동시장에서 낮은 소득과 잦은 소득상실로 인한 절망감이 자살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607080세대의 빈곤과 무망(無望)이 생을 의도적으로 마감하려는 시도의 가장 높은 원인이라는 점은 어쩌면 한국사회의 비정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평균수명의 증가가 축복이 아닌 형벌로 인식되는 계층, 일명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세대’로 일컬어지는 계층의 607080세대에 빈곤은 무망, 즉 희망이 꺾이는 것이 아니라 희망 자체를 만들어낼 힘을 아예 없앤다는 점에서 다른 세대보다 훨씬 위험한 희망절벽이라 하겠다.

올해 1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로 인해 이전부터 강조되었던 경찰관서와 소방관서, 그리고 자살시도자에 대한 사례관리자의 중요성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고물가, 고금리, 실질소득감소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빈곤과 사회적 단절의 위험에 내쳐지는 요즘, 경찰, 소방관, 정신건강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이웃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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