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의 세금과 사회] 기재부가 이상하다

입력 2022-11-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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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포용재정포럼 회장,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제임스 뷰캐넌은 공공선택학파의 창립에 기여한 학자이다. 1950년대 이후 공공선택론은 기존의 재정학과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정치가와 관료들을 이기적 경제 주체로 파악했고, 정부 부문에서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더 많은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위하여 예산 규모를 과대하게 증대시킨다고 보았다. 관료제로 인하여 예산과 정부 부문의 규모는 국민들이 선호하는 수준보다 과다하게 확대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부라는 모호한 개념 뒤에 실제적인 이해관계에 노출된 정치인과 관료가 있고, 이들의 행태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는 뷰캐넌의 시각은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러나 관료들의 사익추구 성향이 예산 규모를 과다하게 만든다는 논리는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어 항상 타당한 이론은 아닐 것이다. 현시점의 대한민국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뷰캐넌의 시각은 예산과 관련하여 관료들을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본 것이다. 한국에서 예산과 관련하여 관료들의 행태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최소한 두 개의 상반되는 관료집단을 구분해야 한다. 예산실행부서와 예산통제부서에 속한 관료들의 행태는 크게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나 국토건설부 같은 예산실행부서의 관료들에게 늘어나는 예산은 그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크기를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와 같은 예산통제부서는 권한의 발생 원천이 전혀 다르다. 기재부의 실체적인 권한은 다른 모든 예산집행부서들에(산하기관과 중앙정부의 예산에 의존하는 지방정부들도 포함된다) 미치는데 정치권의 예산에 대한 통제력이 약할수록, 그리고 예산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일수록 그 권한은 더 커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예산에 대한 통제력 혹은 결정권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 권력이 행사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가 예산에 대한 결정권과 통제력을 가지는 것이며, 기재부는 정치권의 효율적인 결정을 위하여 자료를 준비하는 곳이다. 국토부나 복지부에서 집행할 예산은 주거나 복지에 대하여 얼마를 지출하는 것이 국민들을 위하여 바람직한지를 감안하면서 대통령과 의회가 결정하는 것이지, 국토부나 복지부의 관료들이 예산시즌에 기재부 예산실 앞에서 줄 서서 기재부 관료들에게 호소할 사안은 아닐 것이다.

기재부는 예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인색하다. 보도자료의 내용은 가공되고 선별된 것으로 그들의 관점으로 예산 내용을 보도록 강요하는 자료이다. 이를 통하여 예산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기재부의 행태는 부족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여론으로부터 예산통제력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정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예산에 대한 상대적인 전문성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기재부 관료들의 입장에서는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 예산집행부서 관료들을 다스리기 더 유리할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기재부가 보여주고 있는 이상한 행태들이 잘 설명이 된다. 전통적으로 기재부가 고수하는 건전재정론은 그 정도가 지나쳐서 중부담 중복지 국가를 만들어가기 위한 수준의 정부지출을 불가능하게 한다. 최근 수년 동안의 기재부의 세수 추계는 추세적으로 과소하게 이루어졌다. 2021년 본예산을 제출하면서 기재부가 제출한 국세수입 추정 규모보다 결산에서는 무려 90조 원 규모의 세수초과가 생겼다. 세수과소추계의 문제로 그렇게 크게 질책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9월까지의 국세수입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도 일정 규모의 초과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이 부족하면 감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데 기재부는 재정이 어렵다면서도 2022년 세제개편안에 큰 규모의 감세를 동반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 과정에서 세제개편으로 인한 세수감소의 효과는 감추고 있다. 기재부는 2022년 세제개편안에서 당초 향후 5년간 13조 원의 세수가 감소한다는 계산을 제시했으나 이는 특정 연도의 세수증감 규모를 직전 연도에 비교한 세수감소 효과만을 계산한 것으로, 야당의 추궁에 대하여 추경호 장관은 실제 세수감소 효과는 향후 5년간 60조 원 정도인 것을 시인했다.

건전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세수가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기재부의 예산실행부서에 대한 장악력은 커지기 마련이다. 성과평가 등을 통하여 예산집행부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의 시각도 그럴수록 더 우호적으로 바뀐다. 그러기에 재정이 부족하다면서도 실제 세수감소 효과를 감추어가면서 무리하게 큰 규모의 감세를 해서 오히려 재정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제개편안에 제시된 법인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주식양도차익 과세 분야의 소득최상위 계층에만 유리한 감세 내용은 경제위기 돌파에 도움이 될 일말의 가능성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독재자들은 경제발전을 위하여 유능한 경제관료들을 우대했고 권한을 몰아주었다. 독재자에게 충성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강력한 집단으로 성장했다. 민주화 이후 진보적인 정부가 서면서 이들은 예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가로막는 집단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도 기재부의 통제에 실패했다. 이들의 집단적인 행태로 말미암아 국민경제의 발전에 적절한 규모와 내용의 예산편성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의 정책수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인 재정정책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기재부 관료들이 타 부서의 장차관직이나 국무조정실의 고위직을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정부 산하기관 기관장 자리의 상당 부분도 차지하고 있다. 또 많은 이들이 국회에 진출한다. 이들이 유능해서일까? 예산실의 기능이 기재부 출신들을 돕지 않더라도? 강력한 이익집단이 되면서 우리 사회 최상위계층에 경제권력의 파트너로 자리 잡은 그들이 예산안과 세제개편안에서 부자감세 및 복지축소를 제안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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