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관료들의 안전 감수성을 어찌할 것인가

입력 2022-11-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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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준비 없이 대통령실을 용산 국방 관련 시설로 옮겼다. 연쇄적인 시설과 인력 이전은 언제 어떻게 자리 잡게 될지 얼마나 많은 예산이 쓰이게 될지 알 수 없다. 수백 수천억의 혈세를 낭비하고, 경호 등에 경찰력이 무리하게 동원되고 있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내놓지 않는다. 국민의 절반 이상은 이제라도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라고 한다.

인간이 만든 에너지원 가운데 가장 위험하고 이제는 경제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대통령은 6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라”라고 했다. 안전 불감증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실토하면서까지 원전 관련 산업 수출 성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미 수주가 불가능하고 성과가 있어도 미미하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때였다. 대통령의 원전에 대한 집착을 나름 해명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심전심으로 그 집착을 이해해주는 국민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관료제의 수장인 대통령의 이 발언은 국민안전 불감증을 관료들에게 대놓고 전염시켜 왔다.

이태원에 축제를 즐기러 모인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었다. 속보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어이가 없어 무슨 일인가 했다. 백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밀리고 눌려 거리에서 죽었다는 속보가 이어져 큰 사고가 일어났다는 현타가 왔다. 문득 일어나 방문을 열고 자는 아이를 확인했다. 나중에 많은 부모들의 첫 반응이 그러했다는 얘길 들었다. 한국으로 놀러오거나 공부하러 온 다른 나라 젊은이들의 부모와 친구들도 그러했으리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 거리에서 156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외국에서 온 젊은이들도 26명이 거리에서 죽었다. 200명에 달하는 이들이 부상으로 병원치료 중이다. 사회적 재난이자 참사이다. 희생된 이들과 가족들에게 슬픔과 위로,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분향소엔 가질 못했다. 막연한 사고 사망자에게 마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추모하고 슬프고 죄스러운 마음을 전할 이들은 참사로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죽었는지 납득이 되어야 마음으로 추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참사와 희생자를 대하는 정치, 행정 관료들의 수습과 대응은 더욱 가관이다. 관료들의 또 다른 안전 감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득권과 자리를 안전하게 지키려는 감수성은 온갖 핑계와 변명과 거짓말로 발현되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는 마약과의 전쟁으로 성과를 내려 한 집권 세력의 정치적 과욕이 보편적 국민안전 역할을 소홀히 하게 해, 예방적 혼잡 경비도 신고 대응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아 벌어진 일로 보인다. 혼잡 경비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는 그 누구도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고, 권한은 한계가 있다며 자리를 보전하려 하고 책임은 남 탓 현장 탓을 하며 변명하고 떠넘기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관료제가 주권에 대한 보편적 안전 책임을 헌법에서부터 모든 직무 역할에 명시하고 있으나, 관료들이 책무보다는 권한을 권력화하고 선민계급화하여 사회적 자원과 명예를 독차지하고 지속하려는 속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과 교훈은 오래되었다. 관료제의 속성이 강화되면 주권자 국민과의 괴리가 커지고, 공감력마저 사라지는 단계에 이른다.

내가 관심을 갖는 농촌 현장에서 근래에 많이 듣는 얘기가 공무원들의 농촌과 농민에 대한 소명의식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는 말이다. 단순히 세태 탓만 할 수 없는 것이, 정책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친환경농산물인증제도는 소비자 안전을 명분으로, 생산자를 친환경으로 생산과정을 전환해가는 실천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위반자로 보고, 결과인 농산물의 성분 검출로만 판정한다. 생산과정의 실천 의지와 노력은 소비상품만을 중시하는 관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가축전염병 정책과정도 청정국 지위를 관료적 성과로 삼아, 예방이란 이름으로 과도하고 무분별한 살처분이 자행된다. 청정국 지위로 얻을 수 있는 교역의 실질 이득은 없는데도 말이다.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여 단속하고 수사 기소를 남발하고 있으니, 게다가 편을 갈라 선택적 집행을 하고 있으니 검찰 공화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기득권 관료그룹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보편적 안전 명분마저 저버리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

주권을 바로 세우고 관료를 혁신해가는 일, 관료들의 안전 감수성을 제대로 일깨우는 일이 정치인데, 정치마저 스스로 관료화하고 있다면 주권자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위임한 권한을 권력화하는 정치관료를 끌어내려야 당장 참사 희생자를 제대로 추모할 수 있다. 주권자들이 촛불을 들지 않아도 돌아갈 만큼 헌법부터 위임체계, 소환제도 등을 정비해가야 한다. 그러려면 올겨울에도 촛불을 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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