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ESG 네거티브 다시 보기

입력 2022-10-26 14:16 수정 2022-10-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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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경제연구소장
▲김호준 대신경제연구소장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이상 인상’을 하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3회 연속 강행하면서 본격적인 고금리 시대를 열고 있다. 금리가 급등하면 상대적으로 정해진 이자만 지급하는 채권의 가격은 폭락하므로, 회사채 시장이 입는 타격은 치명적이다. 원/달러 환율이 이미 1400원대를 뚫었고 현재의 미국 경기를 감안할 때 금리의 추가 상승이 예상되어, 향후 채권 시장의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특히, 자산의 해외노출 리스크로 인해 원화로 해지(Hedge)한 해외채권의 손실 폭은 한미 금리 역전과 환율 상승 시 더욱 커지므로, 그야말로 피바다 상황이다. 자연히,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적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미(未)매각 채권이 속출하고, 채권 발행 자체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자본시장에는 악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ESG 네거티브 정책(ESG Negative Screening)이다. 온실가스의 주범이 된 석탄이나 전쟁에 무기 등 반인륜적인 제품이거나 부정적인 산업에 해당하는 회사면 사전 심사를 통해 투자를 배제하는 정책이다. 대표적인 예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발행하는 주식이나 채권이다.

민간석탄발전사인 삼척블루파워는 지난 3분기에 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24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투자수요는 50억 원에 그쳤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된 이유도 있겠지만, 필자가 현장 고민을 들은 바로는 금융사들의 ESG 네거티브 정책 탓이 더 컸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 석탄 화력이라는 제품 기준으로 무조건 투자 배제된 것이다. ESG 정책에서 시작된 타격은 회사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화력발전에 의한 전력 생산 자체가 줄어들고 기관투자자들의 투자배제가 지속될 경우, 해당 설비의 소유가치나 쓰임새도 점점 줄어들면서 설비자산 가격도 동반 하락하는 소위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 신용평가 3사가 올해 삼척블루파워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등급으로 낮춘 주된 이유다. 이 경우, 회사가 부담해야 할 금리는 더 높아지고, 참가할 수 있는 적격 투자자들의 범위는 더욱 낮아진다.

ESG 네거티브 이슈는 지분 투자에서도 떠올랐다. 아직 국정감사 시즌 중인 10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ESG 책임투자를 강조해온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KIC)가 “해외 석탄 관련 16개 기업에 지분 3억 5900만 달러(약 5000억 원 이상)를 투자했다”고 지적하며, “석탄 관련 기업투자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ESG 네거티브 제품이기에 투자 배제해야 한다는 이유다. 온실가스로 신음하는 지구를 구하고, 인류의 건강과 행복, 안전에 역행하는 제품에 대해 자본시장의 주체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자하자’는 의도는 분명 온당하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책임의 성격과 이행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법. 여기 절대 간과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해외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로 ESG 네거티브 정책의 접근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라의 안전이 위협받으면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 냉혹한 국제 현실을 지켜보면서, 탄탄한 자주국방의 필요에 따라 최소한의 방어 무기 보유 타당성이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제품에 대한 정책의 변화는 전보다 더 대조적이다. 지난해부터 천연가스, 석유 등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화석연료 회사의 포트폴리오 편입 여부에 따라 투자수익률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선언 이후 가격은 더 오르고 있다. ESG 선진국을 표방하는 나라들도 자국의 전기 생산 차질과 전기요금 급등에 비상이 걸렸다. 경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인프라로 인해, 나라 살림 전체가 위태로워질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EU가 먼저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화석은 안된다며, 재생에너지 확대 위주의 위기 대응을 촉구했다. 하지만, 각국은 공동체의 이념 보다는 자국의 현실이 더 중요했다. 독일은 기존에 생산을 중단하고 예비 전력원으로 남겨 두었던 석탄 발전을 재가동했다. 이웃 나라 오스트리아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했다. 네덜란드는 최대 35%까지 화력발전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했다. 자본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급변한 시장 상황의 현실적인 타개책을 찾아야 했다. 책임투자의 지속적인 추진과 거시 경제의 안정, 고객의 기업 투자수익률 증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아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지속가능성 관련 글로벌 평가 및 리서치 기관들은 이러한 트랜드 변화를 발 빠르게 포착했다. MSCI는 Net Zero를 위해 단순히 투자배제만 하고 책임을 다한 것처럼 뒷짐 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 Global도 투자배제가 즉각적인 효과가 있긴 하지만, 단점 또한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화석기업에 투자하되 효과적인 관여 활동(Engagement)을 통해 ESG 요소를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는 정책을 권고했다. Sustainalytics도 투자는 하되, 관여 활동 후 효과가 없으면 투자철회 하는 방식을 지지했다.

해외 자산운용사들도 이러한 이슈를 현실에 맞게 절충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2020년 고객 서한을 통해 “발전용 석탄 생산이 매출 25%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은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던 블랙록은 2022년 CEO 연례 서한을 통해 “석유 및 가스회사의 투자배제를 기본정책으로 삼고 있지 않다”면서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는 기업에 투자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Net Zero 세상을 실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뱅가드도 “석탄사업에 무조건적인 투자배제를 하지 않겠다. 탄소 고배출 기업의 저탄소화를 추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는 행위”라고 천명했다. 형식적인 제품배제 또는 즉각적인 배제보다는 매출 비중과 관여 활동의 효과를 고려하며 점진적이고 실질적인 ESG 개선 추구의 입장을 분명히 선언한 것이다.

한국의 넷제로도 화석연료를 전면 배제하는 안(A안)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시장 상황을 고려하여 일부 화력은 존치하되, 친환경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전환해 나가는 B안도 있다. 국내외 동향과 정책의 실질적인 효과를 고려해 볼 때, 현재 한국의 ESG 네거티브 관점은 좀 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진정 지구를 살리고 인류 모두를 이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책임투자의 진정한 명분과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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