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연의 연기에는 유머가 살아 숨 쉰다

입력 2022-04-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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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임씨를 부탁해' 촬영 현장의 박성연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
▲'말임씨를 부탁해' 촬영 현장의 박성연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
드라마 ‘마인(2021)'의 주집사,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의 김팀장, ‘독전(2018)'의 수화통역사를 거치며 대중의 호평을 받은 박성연의 연기에는 유머가 살아 숨 쉰다.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적당한 여유를 유지하면서도 자기 할 일은 명료하게 해 나가는 캐릭터는 한결 입체적이다.

박경목 감독의 신작 ‘말임씨를 부탁해’에서 박성연이 맡은 요양보호사 미선 역은 인간미는 있지만, 기대만큼 도덕적이지는 않은 다층적인 면모의 캐릭터다. 진지한 상황에서도 '숨 쉴 구멍'을 마련할 줄 아는 그의 연기 기술이 한층 빛나는 배역이다.

13일 개봉한 ‘말임씨를 부탁해’는 서울에 사는 아들 종욱(김영민)이 팔이 부러진 채 대구에서 홀로 지내는 85세 어머니 ‘말임(김영옥)'을 돌봐줄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을 고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말임씨를 부탁해' 포스터 (씨네필운)
▲'말임씨를 부탁해' 포스터 (씨네필운)

요양보호사 미선은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할머니를 돌보지만, 알고 보면 섬망 증상에 시달리는 할머니를 은근슬쩍 뒤로한 채 마음대로 부엌 식기나 냉장고 먹거리를 챙겨 나서고, 심지어는 비싼 옷가지까지 집어 간다.

요양보호사로서의 의무와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아슬하게 선을 타던 미선은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돈이 필요해지자 말임의 쌈짓돈을 가로챈다. 그러고는 말임의 아들 내외와의 갈등이 폭발하는 대목에서 오히려 더 크게 역정을 내며 욕을 퍼붓는다.

“아이, 치아라 고마. 아이 XX 진짜. 그래 내가 가 갔다. 그 백만원. 내 가 갔다. 우리 엄마 병원비 한다고 내가 좀 갔다 썼다. 내가 일 해가 갚아 줄께요. 요새 백만원이 돈입니까. 그 돈 받고 어머니 모실 수 있겠어예? 내한테 다 맡겨 놓고, 어 전화 한번 안코, 반찬만 빼꼼 보내주고, 그 카메라로 감시하고 그카면 아들노릇 다 한겁니까? 아이고 XX 진짜, 나무 어마이도 아니고, 지그 엄마한테도 잘 못하는 것들이. XX 같은 것들이 진짜.”

▲'말임씨를 부탁해' 스틸컷 (씨네필운)
▲'말임씨를 부탁해' 스틸컷 (씨네필운)

적반하장인 듯하지만 어쩐지 반박하기는 어려운, 이 뼈 있는 대사에 'XX'로 표시된 욕을 섞어 내뱉은 건 박성연의 아이디어다. 마냥 미워하기만은 어려운 미선 캐릭터의 생동감을 한층 살리는 재미있는 추임새 역할을 해낸다.

“욕 정말 잘하죠, 저. 연극 할 때부터 제가 욕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더라고요.” 해맑게 웃는 박성연은 “감독님한테 그 장면에서 미선이 느끼는 감정선이 어떨 것 같은지 말씀드리고 ‘저는 여기서 욕을 하고 싶거든요’ 라고 말했어요. 연기를 보여드리니 좋다고 해주시더라고요”라며 당시를 전했다.

그의 재기 넘치는 연기 아이디어는 ‘82년생 김지영’에도 반영됐다. ‘직장 다니는 엄마가 키운 아이는 나중에 어디가 잘못돼도 잘못된다’는 눈치 없는 발언을 쏟아내는 상사의 말을 끊고, 권투하듯 양손을 좌우로 흔드는 제스처를 취하며 “회의할까요?”하고 묻는 워킹맘 김팀장의 장면이 바로 그 대목이다.

▲'말임씨를 부탁해' 촬영 현장의 박성연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
▲'말임씨를 부탁해' 촬영 현장의 박성연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

경고인 듯 유머 같은 느낌의 연기를 본 김도영 감독은 처음에는 너무 가벼운 인상이 든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박성연 특유의 웃음기가 반영된 그 장면이 캐릭터와 더 어울린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82년생 김지영’의 김팀장은 프로페셔널 슈퍼 워킹맘이잖아요. 중년의 상사와 맞붙을 때는 그 사람의 기분을 한 번 풀어주고, 다시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김팀장다운 전문적인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려면 결국 유머밖에는 없거든요. 한 번 까불어주는 거죠. 그리고 내가 까불어준다는 걸, 상사도 모르지는 않는 거고요”

자칫 불편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웃음으로 상황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그 대가로 자신이 얻는 걸 효과적으로 취하는 연기는 철저히 그의 계산에 따른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줄 때가 있어요. ‘82년생 김지영’을 개봉하고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기 시작하면서 댓글이나 DM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회사에 가면 꼭 김팀장 같은 선배가 되고 싶다’든지, ‘아이 낳고 몇 주 만에 일을 다시 시작했을 정도로 사회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마치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든지… 단순히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좋더라고요.” 자신의 연기에 공감하고, 그래서 위로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을 듣는 게 배우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기쁜 “최종 보너스”라고 했다.

▲'말임씨를 부탁해' 스틸컷 (씨네필운)
▲'말임씨를 부탁해' 스틸컷 (씨네필운)

그게 ‘최종 보너스’라면, 배우로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단박에 “게런티!”라고 외치며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는 박성연의 밝은 에너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의 기분 좋은 당당함이 읽혔다.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되는 유머의 효과를 익히 아는 자의 화술이다.

“객관적인 눈으로 상황을 여유롭게 보니 유머감이 생기더라고요. 어릴 땐 너무 진지하기만 해서 그런 게 없었어요. 그런데 살면서 ‘딥’한 이야기를 할 때 유머가 상황을 얼마나 환기시켜주는지 깨닫게 되네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느끼고 있습니다.”

박성연은 요즘 곽도원, 윤두준, 한고은의 코믹 휴먼드라마 ‘구필수는 없다’의 막바지 촬영 중이다. 동시에 사극 ‘붉은 단심’의 엄격한 훈육 상궁역을 맡아 한창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5월 초 공개를 앞둔 두 작품의 극과 극 캐릭터 연기를 병행하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할 맛이 나는” 캐릭터를 맡는 요즘이 그는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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