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법률-이혼] 한국말 못한다고 양육권을 가질 수 없나

입력 2022-03-0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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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가 이혼할 때는 누가 아이의 양육권자가 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양육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 부부 사이에 합의가 되면 좋겠지만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보통은 서로 자신이 아이의 양육권을 갖겠다면서 다투지만, 필자는 이혼한 부부가 서로 양육권을 갖지 않겠다면서 다투는 사건도 경험해 봤다. 양쪽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이었는데 아직 어린 아이의 양육권을 서로 갖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꽤 답답한 심정이 들었다.

법원에서 양육권자를 정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정하게 될까. 법원은 양육권자를 정할 때 미성년 자녀의 성별과 연령, 그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양육 의사의 유무,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와 모가 제공하려는 양육방식의 내용과 합리성ㆍ적합성 및 상호 간의 조화 가능성, 부 또는 모와 미성년 자녀 사이의 친밀도, 미성년 자녀의 의사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성년 자녀의 성장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되고 적합한 방향으로 판단한다. 기준이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보통 엄마가 양육권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아이가 어릴수록 더 그런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양육권자 결정과 관련해 흥미로운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베트남 여성 A 씨는 한국인 남성 B 씨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A 씨와 B 씨 사이에 불화가 생겨, A 씨가 아이를 데리고 가출을 했다. 이후 A 씨와 B 씨는 별거를 계속 했고, 이혼과 양육권자 지정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별거 기간 동안 A 씨가 아이를 혼자 키워왔고, 아이가 엄마인 A 씨와 친밀도가 높다고 인정하면서도, A 씨가 베트남인으로 한국말이 능숙하지 않고, A 씨의 주거지나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으며, B 씨가 A 씨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남편인 B 씨를 양육권자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아내 A씨가 대법원에 상고 했는데, 대법원은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한 외국인보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적합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고, 미성년 자녀는 교육을 통해 한국말을 습득할 수 있으므로 외국인 부모의 한국어 소통능력이 미성년 자녀의 건강한 성장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대법원은, 국어 소통능력을 양육권자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자칫 출신 국가 등을 차별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고,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 및 모국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자녀의 자아 존중감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현재의 양육 상태에 변경을 가하여 친권자 및 양육자를 지정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양육 상태가 미성년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되고, 상대방을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현재의 양육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보다 미성년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이 명백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남편 B 씨를 양육권자로 지정한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 찬성한다. 한국어 소통능력이 왜 양육권자를 판단하는 근거가 돼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고, 만일 A 씨가 베트남인이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인이었다면 처음 판결이 남편을 양육권자로 지정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사람이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아이 양육권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양육권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좋은 아내, 남편은 아니더라도 좋은 엄마, 아빠는 얼마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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