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칭찬에 우쭐댈 때 아니다

입력 2021-10-26 05:00 수정 2021-10-26 07:16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그는 ‘깨지기 쉬운(fragile)’의 반대가 단순히 ‘강건한(robust)’ 것이 아니라는 데 주목했다. 탈레브는 “경제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비슷해 평소 작은 실패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아야 큰 위기가 왔을 때 견딜 수 있는 강한 체질로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충격에 잘 버티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지는 속성을 지닌 모든 것에 ‘앤티프래자일(antifragile)’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쉽게 깨지고 무너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매번 일어선다. 기업이나 국가, 경제, 기술, 사상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위기에는 오히려 더 단단하게 벼려지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더 강해지는 진화 과정을 거치는 게 생명체의 특성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지구촌을 덮친 지 13년이 지났다. 2008년 9월 15일 뉴욕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 158년 전통을 자랑하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날이 밝자 전 세계 금융시장은 공황에 빠졌다. 그 후 세상은 달라졌다. 금융과 기업·국가 경제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는 곳과 때릴수록 단단해지는 강철 같은 부류로 나뉘었다. 위기 때 되레 강해지는 곳도 간혹 있었다.

한국 경제는 어떤가. 우리는 위기를 가장 먼저 벗어난 것으로 자부했고 부러움도 샀다. 심지어 한국을 아시아의 ‘안전지대’(safe haven)를 넘어 세계 정치·경제를 바꿀 소프트파워(soft power·연성 권력) 강국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소 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글로벌 자본은 과거 위기 때마다 으레 달러나 금 자산을 피난처로 여겼다. 정치적 격변기 때 스위스나 조세 회피처로 몰리는 돈도 많았다. 이제 한국 국채도 그런 안전자산 반열에 든 걸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신흥국들에서 발을 빼고 있는 돈들이 한국으로 밀려드는 걸 보면 그런 것도 같다. 외국인들이 보유한 원화 채권은 9월 사상 처음으로 200조 원을 넘어섰다.

외신과 석학들의 찬사도 이어진다. 조지프 나이 미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이달 초 미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한국의 소프트웨어가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경제적 성공에 이어 정치적 성공을 거두면서 민주주의 문화를 이뤘는데 이런 ‘성공 스토리’가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위기 후 한국 경제가 단단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구조나 체질은 바뀐 게 별로 없다. 높은 환율 덕을 보는 수출 의존형 성장모델도 그대로다. 달러당 원화 환율은 리먼사태 직전인 2008년 3분기(평균 1066원)보다 높다. 정부와 공기업, 가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 분기 대비 0.1% 증가해 지난해 2분기(-2.0%)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게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의미다. 반면 소비자물가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는다.

가진 양질의 노동력과 자본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물가는 치솟고, 소득 불평등 정도와 고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청년들은 자기들을 스스로 ‘벼락거지’, ‘N포세대’라 자조한다. 그런데도 통화정책(금리인상)을 쉽게 쓰지 못한다. 재정수지도 바닥나 재정정책을 쓸 엄두도 못 낸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처방으로는 위드코로나 시대를 버티기 힘들다. 위기는 일상화되고 있다. 위기에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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