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헤드윅' 김려원 "다름을 보듬는 포용, 관객의 눈물 보며 알아가죠"

입력 2021-09-09 06:00 수정 2021-09-0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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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마다 이성ㆍ감성 줄다리기…이해 폭 넓은 관객 덕에 힘"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은 배우 김려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은 배우 김려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15cm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가발을 쓴 채 무대 위를 휘젓는 로커 헤드윅. 그 옆엔 헤드윅의 공연에 맞춰 다양한 연주를 선사하는 밴드 앵그리인치가 있다.

이들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이가 있다. 헤드윅의 서류상 배우자인 이츠학이다. 수염을 붙이고 가죽 재킷을 입고 있어 자칫 남자배우인가 오인하기 쉽지만 '헤드윅' 무대 위에 오르는 유일한 여성 배우다.

"처음 캐스팅 발표가 났을 때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제가 굉장히 대단한 걸 하고 있다는 걸 축하 인사를 받고 실감했죠."

최근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는 충무아트센터에서 이번 시즌 이츠학 역으로 처음 합류한 배우 김려원을 만났다.

김려원은 캐스팅에 대한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누구보다 치열하게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헤드윅'은 짜진 악보나 대본을 그대로 실행하는 여타의 작품과 달리 '날 것 그 자체'로 정평이 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것을 하는 걸 좋아해서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첫 연습 시간에 '해 봐'라고 하셨거든요. 이츠학마다 부르는 부분과 라인이 다르기도 했고요. 처음엔 뭐가 기본인지 몰라 정말 어려웠어요. 말 그대로 무지(無地)였죠."

배우라는 포지션에 무대 감독 역할까지 더해진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공식' 러닝타임은 인터미션이 따로 없는 2시간 15분인데 이츠학은 조명이 헤드윅에 향해 있을 때도 무대 위에서 몸과 마음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헤드윅이 앉을 의자, 그의 새로운 가발 등 챙겨야 할 소품과 장면이 이어진다.

"관객의 시선을 받지 못할 때도 감정선은 유지해야 해요."

김려원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백조 같다'고 표현했다.

"정말 제 안에선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어요. 정신 차리자고 수없이 되뇌죠. 제 나름대로 연기하고 반응하다 무대를 세팅하는 게 정말 어려워요. 중간중간 대사도 쳐줘야 하죠. 헤드윅의 기분도 살펴야 해요. 저는 듣는 사람이자 헤드윅의 남편이니까요. 이성과 감성의 줄다리기를 계속해야 하는 극이에요."

다음은 김려원과의 일문일답.

- 이츠학 역을 맡게 되면서 배우로서 커리어가 확장되고 한 단계 높아졌다.

"'헤드윅'이 이렇게 큰 극장에서 하는 게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참여하게 된 것도 뜻깊어요. 한 번 할 때 훨씬 더 많은 분이 봐주시는 거잖아요. 감회가 새로워요. 조명이 제 자리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많지만,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계속 같이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도 신선한 도전이에요. 대부분 헤드윅의 몫이지만 옆에서 돕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은 배우 김려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은 배우 김려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 연습할 때는 어땠나.

"정말 특별했어요. 다른 작품과 완전히 달랐거든요. 이츠학은 헤드윅과 비교하면 정보가 많이 없어요. 악보도 지난 시즌에 완성됐다고 들었는데, 이츠학이 부르는 부분이 정확히 표시되지 않아요. 음도 그렇고요. '더 롱 그리프트'(The Long Grift) 멜로디도 같이 익히고 부를 줄 알았는데, 한 번 해보라고 하셔서 당황스럽기도 했죠. 저만 처음 이츠학을 하는 것이어서 더 어렵게 느낀 거 같아요. 같은 역할을 맡은 제이민과 이영미 언니가 많이 도와줬어요. '이렇게 해 봐'라는 말이 힘이 됐죠."

- 마니아층이 많은 작품이라 부담이 컸을 텐데.

"처음엔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관객분들이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라는 걸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요. 오래 보신 관객들이 많은 만큼 받아들이는 폭이 넓으시더라고요. 관객도 작품의 의미랑 많이 닮아 있었어요."

- '헤드윅' 첫 무대를 떠올린다면.

"많이 떨렸어요. 이젠 어떤 헤드윅은 어떻게 서포트 해줘야 할지 정리가 돼서 덜 떨리는데 처음엔 헤드윅마다 매뉴얼이 달라서 헷갈렸어요. 무대 감독님을 체험하는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들이 저한테 늘 맞게 세팅해주셨던 것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지 이츠학 하면서 알게 됐어요."

- 무대 위에서 이츠학을 보면 언뜻 '쉬고 있나' 생각할 수 있다.

"절대 아니에요. 하하. 이 노래 끝나면 뭘 해야 할지 등 계속 생각해요. 까먹을까 봐 들어가기 직전까지 대본에 체크했던 것 다시 확인하고요. 하지만 가끔 관객들이 '오늘 블랙 아웃, 화이트 아웃 왔던 거 같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와요. 다행히 '헤드윅'은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공연이에요. 노래 들어가는 타이밍을 자유롭게 해도 집착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즐겨 주시고요. '헤드윅'에선 이츠학으로 살아있으면 많은 것들이 해결되더라고요."

- 작품에 참여하기 전과 후 생각이 바뀌었을 것 같다.

"우선 이츠학은 여성이 되고 싶은 남성이에요. 캐스팅 보드에 여자 얼굴이 붙어 있어서 남성이 되고 싶은 여성으로 보실 수 있는데, 이 점을 알고 보시면 더 많은 것들이 들어올 거예요. 저는 평소에도 소외된 사람, 약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작품을 하면서 생각이 더욱 많아졌어요. 작품을 보는 분들이 사람의 다양성에 대해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고, 인간애적으로 모두를 편견 없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누굴 사랑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판단할 자격이 없으니까요. 자신의 눈에 달라 보인다고 타인에게 상처 주는 일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관객들이 이 마음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헤드윅'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은 배우 김려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은 배우 김려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 헤드윅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이츠학이 무대 위에 등장하면서 존재감이 커진다.

"저는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가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았어요. 이츠학이 왜 여기에 나와 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츠학과 앵그리인치에게 권력을 쥐고 있는 헤드윅이 자신의 억눌림을 타인에게 표출하고 있는 거라 해석했어요. 자기 방어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 모습을 더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요. 헤드윅이 이츠학한테 비로소 자유를 줄 때 헤드윅 역시 자유로웠으면 했죠. 이후 이츠학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무대에 섰을 때 그 감동 역시 더 많이 전해지길 바랐어요."

- 이츠학의 솔로곡에 대해.

"저는 사실 머라이어 캐리의 'Hero'(히어로)를 부르고 싶었어요. '너의 영웅은 너의 안에 있어'라는 가사 때문에요. 제가 헤드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거든요. 돌고 돌아 'One Moment In Time'을 부르게 됐어요. 이 노래는 이츠학한테 집중되는 가사를 담고 있어요. '내가 일어설 수 있게 기회를 주세요'라는 내용이거든요. 그간 헤드윅한테 많이 가 있던 시선이 그때만큼은 이츠학에게 올 수 있는 곡이에요."

- 헤드윅들의 매력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먼저 오만석에 대해.

"만석이 오빠는 연습하는 걸 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 나는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툭 떨어졌어요.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보통 저의 어떤 지점과 맞닿아있거나 서사적으로 슬플 때, 엄마가 생각났을 때 눈물이 나잖아요. 그런데 만석이 오빠는 그냥 갑자기 눈물을 흘리게 했어요. 어린아이들이 되게 깨끗하게 합창할 때 눈물이 왈칵 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꾸며지지 않은 진심을 본 듯했거든요."

- 조승우에 대해.

"승우 오빠는 굉장히 트렌디해요. 현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한 분이에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게 유행인지 너무나 잘 아는 것 같고 적절하게 잘 이용하시는 것 같아요. 헤드윅으로서 무대 위에서 나쁜 말을 할 때도 있는데, 사이다를 마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 저렇게 공감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속 시원한 헤드윅이에요. 타고난 무대체질인 것 같아요. 어느 시대에 태어났어도 사람들을 끌어당겼을 것 같아요."

- 이규형에 대해.

"규형 오빠의 헤드윅은 너무 사랑스러워요. 평소엔 그 오빠가 그렇게 사랑스러운지 잘 모르겠어요. 하하. 다른 작품에 비해 대사를 주고받는 게 많이 없거든요. 그런데 오빠가 따뜻하게 대해줘서 매우 친해졌어요. 선을 잘 타면서 귀엽게 풀어내는 것 같아요. 센스도 있고 아이디어도 넘쳐요. 애드리브도 약속된 부분에서 해줘서 맞추기 편하기도 해요. 제가 실수해도 '나도 틀린 것 같다'라고 해주고요. 스태프가 '아니야, 이츠학이 틀렸어'라고 해도 '공연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해주니까 눈치를 덜 보게 돼요. 덕분에 공연을 떨지 않고 하게 되죠.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큰 헤드윅이에요."

- 고은성에 대해.

"은성이는 자기 말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자존감이 정말 높아 보여요. 스스로는 자기 안에 소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머더 발라드'를 같이 했었는데, 그때부터 지금의 모습이 있었어요. 항상 당당한 모습이 있어요. 그래서 헤드윅하고 너무나도 잘 어울려요. 은성이는 은성이대로 해도 헤드윅 같아요. 뒤에서 보면 '저걸 어떻게 하지', '은성이니까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첫 공연 끝나고 두 번째 공연할 때 '안 떨렸어?'라고 물었는데, '하다 보니 괜찮던데요?'라고 하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객석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헤드윅다워서 놀랄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도 헤드윅의 아픔도 잘 표현해요. 은성이는 정말 찰떡이에요."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은 배우 김려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은 배우 김려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 렌에 대해.

"에너지가 넘쳐요. 무대를 드릴 파고 들어갈 것 같아요. 무대가 부서질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 몸을 불사르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걱정은 엄청 많이 하더라고요. 저와 닮았어요. 저도 제 코가 석 자인데, 위로 많이 해줬어요. 렌은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공연 없는 날엔 대본 맞춰달라고 연락을 해요. 저는 헤드윅의 연약한 모습을 렌에게서 봤어요. 지켜주고 싶은 헤드윅이에요.".

-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마스크 쓰고 공연 보러 오시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힘든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환호성도 못 질러서 박수로 감동을 표현해주고 계시는 것도 정말 감사드려요. 자부심 느끼며 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시기지만, 객석이 에너지로 더 채워질 수 있게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하려 합니다. '헤드윅'이 끝나기 전에 단계가 나아져서 기립 박수 한 번 받아보는 게 소원이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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