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드레싱은 자고로 예뻐야 한다.

입력 2021-09-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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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혜인(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전문의)

어떤 의학드라마에 나왔던 내용인 것 같다. 현대의학이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릴 것이 없다는 선고를 받은 의식 없는 환자분에게 드레싱(dressing, 상처 처치)을 해야 하는 젊은 의사의 고달픈 이야기. 그 젊은 의사는 인턴이나 레지던트였던 것 같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 중에 ‘의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처치’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지쳐 있었다. 환자분은 의식이 없고 이미 사망을 앞두고 있는데, 보호자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의사와 간호사를 불러서 관을 고정하고 있는 밴드를 갈아 달라, 관을 바꿔 달라, 드레싱을 갈아 달라 요구한다. 의사는 대체 왜 이 바쁜 시간에 이러고 있어야 할까 고민하는 내용.

‘의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처치’란 그 처치를 잘 하든, 못 하든, 하든, 안 하든 환자분의 경과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처치라는 뜻이다. 물론 우리가 통상적으로 보는 드레싱이나 처치와는 다르다. 대부분의 드레싱과 처치는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다’. 드레싱에 따라 상처 회복의 정도나 속도가 달라질 수도 있고, 드레싱을 잘못하면 상처가 더 악화되기도 하니까.

나는 치프 레지던트 시절 후배 의사들에게 ‘드레싱은 예쁘게 해야 한다’고 항상 얘기했다. 드레싱은 진짜 예뻐야 한다. 예쁘고 깔끔한 드레싱이 중요한 이유는, 당연히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은 정도가 아니라, 예쁜 드레싱이어야 실제로 효과가 좋다. 상처의 진물을 잘 빨아들이는 데도, 상처에서 나온 균이 주변으로 퍼지지 않게 하는 데도, 주변의 피부나 손에 있는 다른 균들이 상처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상처를 보호하는 데도 드레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쁘다고 대강 해 놓은 드레싱은 덜렁거리거나 끝이 들고 일어나 작은 움직임에도 벗겨져 상처가 그대로 노출되고 손에 있던 균이 상처 안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테이프는 무조건 가위로 잘라라’는 것이 후배들에게 하는 나의 충고였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환자나 보호자의 자존감이다. 깔끔하게 붙여지지 않은 드레싱은 의료진이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할 수도 있다. 존엄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레싱 하나에도 갈릴 수 있으니, 의학적으로 필요하냐 아니냐를 따질 것 없이 예쁘고 깔끔한 드레싱이 필요한 때가 있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더 필요한 법이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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