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인구지진, 빨라지는 재앙의 시간

입력 2021-07-20 05:00

주필

새삼스럽지 않고 코 앞의 일로 실감되지 않으니 절박함이 떨어진다. 암울한 통계수치가 나오면 반짝 거론됐다가 이내 묻힌다.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현안으로 부각된 건 십수 년 전부터인데 정책은 계속 겉돈다. 수많은 대책을 내놓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는 있다. 하지만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알 수 없고, 효과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나 피드백이 이뤄지는 것 같지도 않다. 허송세월로 상황만 계속 나빠진다. 한국의 인구절벽 문제다.

정부가 다시 ‘인구구조 변화 대응전략’을 내놓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0년 후 한국의 ‘인구지진’이 온다”며 특단의 대책을 강조했고, 그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인구감소의 충격 완화, 지역소멸과 축소사회 대응, 초고령 사회의 사회안전망 강화에 주안점이 두어졌다. 우선 여성과 외국인,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방안을 중점 추진하기로 했다. 3분기 안에 구체적 정책과제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인구지진(age-quake)은 출산율 하락과 고령인구 증가, 지역사회 소멸이 국가 구조와 사회 전반에 초대형 지진과 같은 파괴적 충격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1999년 영국 인구학자 폴 월리스가 처음 쓴 표현이다. 한국의 작년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떨어졌다. 가임(可姙)여성이 일생동안 낳는 아이의 숫자다. 부부 100쌍(200명)이 평생 84명의 아이만 낳는, 세계 꼴찌의 ‘출산파업’ 국가다. 올해와 내년에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혼인 건수가 급감해 올해 출산율이 0.7명대, 내년 0.6명대로 추락할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출산율은 2.1명인데, 이런 추세로는 다음 세대로 가면서 출생아가 반토막 이하의 기하급수로 감소한다. 5000만 인구 대한민국 공동체 소멸의 시간도 빨라진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4년 당시의 합계출산율 1.19명으로 예측한 결과, 한국인 인구는 2056년 4000만 명, 2074년 3000만 명, 2097년 2000만 명, 2136년 1000만 명으로 쪼그라드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후 2172년 500만 명, 2256년 100만 명, 2379년 10만 명이다. 지금 훨씬 낮아진 출산율을 대입하면 더 끔찍하다. 이미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아 인구가 자연감소하는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시작됐다. 지난해 출생아가 27만2400명에 사망자는 30만5100명으로 사상 처음 3만2700명 자연감소를 보였다.

한국 출산율은 1983년 인구유지선을 밑돈 2.06명으로 떨어지면서 빨간불이 켜졌다. 그 때도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가 2005년 저출산대책 수립에 나섰을 당시 출산율이 1.07명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2006년부터 세 차례의 기본계획으로 작년까지 쏟아부은 예산은 줄잡아 225조 원 규모다. 4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통해 올해부터 5년 동안 더 투입할 예산도 200조 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아이 낳으면 돈 준다는 차원에 머문 출산장려책의 실패다. 여러 정부 부처로 갈라진 정책 집행 과정에서 누가 무슨 용도에 얼마나 쓰고, 어떤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재앙이 빠르게 닥쳐온다. 생산인구 감소와 노령인구 증가로 생산력과 소비가 감퇴하고 경제성장이 뒷걸음질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노인복지 지출은 급증하는데 세금 내는 인구는 쪼그라든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정부 재정에 과부하가 걸리고 국가 유지 시스템의 지속성이 흔들린다. 병역자원 부족으로 국방의 위협도 가중된다.

출산파업은 불가항력이다. 청년들의 취업과 결혼부터 힘들고,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데다 치솟은 집값·전셋값에 결혼해도 살 집 구하기가 막막하다. 육아·교육비용 부담은 미래에 대한 불안만 키운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좋은 일자리와 청년 주거안정, 일·가정의 양립, 양성 평등, 사교육비 절감 등이 핵심과제이고, 정부도 다각적인 정책 접근에 힘써 왔지만 진전이 없다. 긴 호흡의 사회구조 변화를 일으키기에 정부 역량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다.

기존 저출산 대책은 백약이 무효다. ‘자식이 자산’이었던 시대는 다시 오지 않고,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다. 달라진 세상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방향이 더 시급하다. 국민 개인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노동이나 자본에 기댄 생산요소투입형 경제는 더 지탱할 수 없게 된다. 적은 인구로 가용(可用) 자원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해 사회 구성원들의 몫을 늘리는 게 해법이다.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기술 중심의 경제구조 개편, 노동투입 감소를 상쇄하는 생산성 혁신, 인구가 줄어도 수요가 늘어나는 미래 제품과 서비스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 개인의 소득이 늘고 삶이 윤택해져야 아이를 하나라도 더 낳는다.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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