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씨티은행이 깬 ‘금융허브 꿈’

입력 2021-04-20 05:00 수정 2021-04-20 11:15

안철우 금융부장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인 ‘동북아 금융허브’가 멀어지고 있다.

올해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는 16위로 홍콩(3위)과 싱가포르(4위)와 도쿄(6위)보다도 한참 뒤떨어진다. 2015년 세계 6위를 기록했지만, 6년 새 10계단이나 하락했다. GFCI는 영국계 컨설팅 그룹 지옌(Z/Yen)과 중국종합개발연구원(CDI)이 공동으로 주관해 매년 3·9월에 산출하며, 비즈니스 환경·금융산업 발전·인프라·인적자원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의 금융경쟁력을 측정하는 대표지수인 지수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동북아시아 금융허브 추진전략 수립 당시 한국을 홍콩과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목표 달성 시기는 2020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밑그림을 그린 물류 주축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 구상을 금융 허브로 진화시킨 게 목표였다.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는 금융산업이 지금도 심각한 청년실업의 문제를 푸는 단초에서 시작된 것이다.

당시 로드맵대로라면 지난해 한국은 ‘아시아 3대 금융허브’의 원년이 됐어야 했지만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꿈이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아시아의 금융허브 홍콩이 흔들렸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으로 홍콩을 떠나려는 금융기관과 인재의 행보가 이슈가 됐다. 그러나 정부는 조용했다. 일본과 싱가포르, 대만 등이 타깃이 된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열고 사무실 무상임대, 세제 혜택 등을 집중 홍보할 때 우리 정부는 명함조차 내밀지 않았다. 단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우리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비해 법인세 소득세가 높고 노동시장도 경직돼 있다”면서도 “금융허브만을 위한 세제와 고용제도 개편엔 한계가 있다”는 한 회의에서의 발언으로 짐작할 수 있다. 금융허브를 위한 환경 개선은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다.

노무현 정부와 뿌리는 같지만 금융산업을 해석하는 정부의 시각은 다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심의한 ‘제5차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안(2020∼2022년)’은 해외 금융사의 한국 유치 대신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무현 정부는 해외 금융사를 유치해 금융산업의 메카로 만들자던 계획이었는데, 정책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대표 은행인 씨티은행이 한국 진출 17년 만에 소매금융에서 철수키로 결정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씨티그룹은 부진한 사업을 정리해 수익성을 끌어올리고자 한국을 포함한 13개 국가를 대상으로 철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배당 간섭과 각종 금융 지원 차출 등 한국 특유의 관치금융 문화도 철수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 연례 행사처럼 해외 본사로 배당을 할 경우에는 국부 유출 논란도 불거졌다. 더욱이 올해는 금융당국이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코로나19를 이유로 직접 배당 성향을 20%로 제한한 상황이어서 부담은 가중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씨티은행은 권고에 딱 맞춰 배당 성향을 20%로 결정했다.

이런 환경 탓에 씨티은행처럼 한 회사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2017년에는 골드만삭스와 RBS, BBVA가 한국에서 철수했고, 2018년엔 UBS가 은행부문 사업을 철수했다. 2019년엔 맥쿼리은행이 한국에 등을 돌렸다. 동북아 금융허브는 뒷전으로 밀리고, 결국엔 외국계 금융회사의 ‘엑소더스’(대탈출)만 자초했다는 비판이다.

글로벌 금융사들의 철수는 국내 금융사의 선진 금융기법 습득 기회가 줄어들고, 양질의 전문직 일자리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대형 은행인 HSBC는 국내 소매금융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230명 규모로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정부는 한국 금융시장의 매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유야 어떻든 GFCI 순위가 6년 새 10계단이나 추락했다. 외국계 금융사들의 한국 시장 철수 결정이 잇따르고 있는 것을 예사롭게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 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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